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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놓고 싶지 않은 노래, 희망

등록 2021-12-29 18:07수정 2021-12-30 02:31

이참에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연하장엔 이렇게 쓰고 싶다. ‘놓고 싶지 않은 희망의 노래가 있습니다.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그때 한마음으로 불렀던, 그 희망입니다. 새해에 바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 | 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생인손을 앓을 모양이다. 네가 늘 말하듯이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데, 어쩌다 박스 사이에 새끼손톱이 걸려 살이 벌어지더니 욱신거리고 아프다.

어깨가 움츠러드는 이즈음을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동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심심하지는 않으시냐 여쭸는데, 대뜸 김치통 하나 들고 내려오라신다. 지난번에 잠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올해는 동치미를 안 담갔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덜렁 김치통만 들고 가기 민망하여, 뭘 담아서 내려갈지 한참을 찾다 내려갔다. 할머니는 집 앞 텃밭에 마늘을 심으셨어. 그 위에 도리깨질로 타작을 마친 콩깍지를 이불처럼 아주 곱게 덮어주셨더구나. 콩깍지 이불을 보며 혼자 웃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보고 싶은 사실만 골라 듣고 보기 마련이다. 몇해 전, 트로트가 너나없이 이야깃거리로 오르내릴 때야. 뭔가 어르신들 눈에 들려 애쓰는 청년을 보는 듯, 마음이 안 좋아져서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편향된 종편채널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니 더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만큼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잖니. 진실이나 가치보다 얻거나 잃게 되는 것에 마음을 쓰다 보면, 편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야. 득이 되는 것이라면 크고 잘 보이게, 실이 되는 것은 보잘것없게. 성향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선택하는 일상을 마주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구나. 그런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만,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똑같은 사람이 되겠지.

‘아침이슬 50주년 콘서트’에 초대를 받았다. 괴산에 내려오기 전에도 마음은 있으나 콘서트를 찾아다닐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지라 반가웠다. 더구나 김민기 기념 콘서트라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공연은 1, 2부로 나누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오프닝에만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고 출연진에 따라 각자의 밴드가 함께했다. 출연진이 바뀌고 노래가 거듭될수록, 숨이 깊어졌다. 특히나 그 리듬이 좋았던 ‘아름다운 사람’을 들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스멀스멀 물기가 고였다. 노래마다 더해지는 이야기 역시 가슴을 흔들었다. 그래, 엄마에게도 이런 노래를 듣고, 또 따라 부르던 젊은 시절의 뜨거운 가슴이 있었다고 돌이켜보았다. 2부는 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상록수’를 들으면서는 지난날에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하지 않은 현악기들의 소리가 애잔함을 더했다. 그런 감정은 ‘아침이슬’에서 절정에 이르렀어. 목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마스크 속에서 소리 없이 따라 불렀다. 가슴에 새겨진 노랫말이 저절로 목을 타고 올라오기에 억지로 참을 수가 없었다. 함께하는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목청껏 부르던 노래 아니던가. 노랫말이 가진 힘으로 군홧발에 짓밟히면서도 포기하지 않게 했지. 그렇게 함께 불렀던 노래.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게 하는 구심점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가 있었기에 끝끝내 견뎌낼 수 있었다.

노래가 주는 위로는 우리네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들에게도 있었다. 날마다 힘들게 일하던 할머니들에게 꽃 피는 때가 오면, 꽃놀이 다녀오라고 주어지던 하루의 휴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때 글조차 배울 필요 없다며 학교에서 멀어졌던 할머니들이지만, 꽃이 피는 시절에 꽃놀이로 하루를 마음껏 자유롭게 즐겼다는 사실은 엄연히 민중의 삶 속에서 이어져 왔단다. 공연은 두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이 났다. 괴산에서 오전에 출발하였는데, 돌아올 적에는 캄캄한 밤이었다. 김민기 헌정 콘서트에 온전히 바친 하루였다. 들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여운도 길다. 괴산에도 이런 콘서트가 있으면 좋으련만.

한해의 끄트머리에 섰다. 지난 8개월 남짓, 글 쓰느라 고생했다며, 한겨레로부터 생각하지도 않은 선물을 받았다. 환경을 생각한 선물들이라 더 좋았다. 일년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한편 쓸쓸한 마음도 들더구나. 한해를 돌아보면 고맙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만나서 밥 먹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대신 마음을 전할 연하장을 사려고 우체국에 들렀더니 준비한 물량이 다 떨어졌다는구나. 대신 주소와 내용을 주면 연하장을 인쇄하여 보내주겠다고 했다. 연하장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쓰며 이름을 부르고 싶은 건데, 안부마저 인쇄해서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그냥 돌아 나왔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읍내에 있는 문구점에 들렀다. 요즘엔 연하장이 안 나온단다. 모든 게 ‘카톡’으로 전해지는 게 분명해진 지금이구나. 이참에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연하장엔 이렇게 쓰고 싶다. ‘놓고 싶지 않은 희망의 노래가 있습니다.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그때 한마음으로 불렀던, 그 희망입니다. 새해에 바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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