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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왜 박정희는 ‘한미동맹’을 말하지 않았을까

등록 2021-08-24 19:37수정 2021-08-25 02:07

1975년 4월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 사이공의 한 건물 옥상에서 미군 헬기를 타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975년 4월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 사이공의 한 건물 옥상에서 미군 헬기를 타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권혁철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 교훈’을 두고 두가지 주장이 맞선다. 보수 쪽에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큰일 나므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하며, 어설픈 자주를 내세워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진보 쪽은 “미국은 국익이 없으면 철수하므로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 지킨다는 자주국방이 중요하고, 그래서 전작권 환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군이 철수하면 우리도 아프간, 베트남처럼 망한다는 식의 일부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들의 걱정에도 일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비약과 과장이 심하다. 나는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전작권을 빨리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작권 회수는 단순히 주권과 나라 자존심 회복이란 감정적 접근이 아니다. 실제 안보를 다지는 데도 중요하다. 지금처럼 미군이 만들어준 작전 구상대로 한국군이 따라 하는 방식으로는 독자적인 작전기획능력, 전쟁수행능력을 갖출 수 없다. 이 능력을 키우려면 우리에게 전작권이 있어야 한다. 첨단무기만 잔뜩 사 온다고 안보가 되는 건 아니다. 이는 미국이 20년간 막대한 돈으로 육성한 아프간 정부군이 며칠 새 허깨비처럼 사라진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쪽은 2021년 8월 아프간 카불에서 1975년 4월 베트남 사이공의 기억을 호출했다. 아프간과 베트남이 시작부터 끝까지 판박이라고 강조한다. 판박이라면 교훈도 비슷하지 않을까. 당시 박정희 정부가 파악한 ‘베트남 교훈’이 궁금했다. 지금 보수 쪽 주장처럼 ‘한-미 동맹 강화’였을까.

1975년 4월29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시국에 관한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은 포위된 사이공이 함락(4월30일)되기 하루 전이었다.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베트남 교훈을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 자주국방, 국론통일 등으로 정리했다. 그는 자주국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번째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은 자기 나라의 국가안보를 남에게 의존하던 그러한 시대는 벌써 갔다 하는 얘깁니다. 이것도 우리가 확실히 명심을 해야 될 줄 압니다. 자기 나라는 자기 힘으로 지키겠다는 굳건한 그런 결의와 또 지킬 만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첫째 우리가 생존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이겁니다. 또 우방의 지원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지키겠다는 결의와 능력을 갖지 못할 때에는 남의 도움도 빌릴 수가 없다, 하는 이러한 그 냉혹한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해야 될 줄 압니다.”

담화에는 ‘한-미 동맹’ 언급이 아예 없다. 우리가 북한과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주한미군’이 두차례 짧게 등장할 뿐이다. 왜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말하지 않았을까. 미국을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왔고 1971년 주한미군 제7사단도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동서 냉전이 데탕트(긴장 완화)로 바뀌면서 국제정세가 요동쳤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자주국방에 나섰다.

1977년 3월9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통보했다. 6일 뒤 열린 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미군이 간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략) 물론 미군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가정교사가 있으면 든든하겠지만 어디 가정교사가 학생 대신 시험을 치러주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체통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가진 우리가 미군 4만에 의존한다면 무엇보다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자주국방력도 이만큼 컸고 지금이라도 전쟁을 하면 승산이 있는데 굳이 미군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익이 없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며 아프간 철군을 옹호했다. 다음날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정부와 군은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 동맹 강화와 강군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냉혹한 ‘국익 우선’ 외교 방침 앞에 ‘기승전 한미동맹’이란 국민의힘의 대책은 너무 순진해 보인다. 46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도 못 미친다. 보수 쪽은 아프간과 베트남이 판박이라고 마냥 강조하지 말고, 박 대통령이 밝힌 ‘베트남 교훈’도 꼼꼼히 읽어봤으면 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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