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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풍경] 유전자와 언어의 진화, 따로 또 나란히

등록 2021-10-12 18:02수정 2021-10-13 02:32

오철우ㅣ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서로 다른 언어의 형성과 생물종의 형성이 모두 점진적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증거를 생각할 때, 그 둘이 병렬적이라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인간의 유래>, 1871) 인용문이 아니더라도 찰스 다윈은 생물 진화뿐 아니라 언어 진화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변이(차이)가 쌓이고 선택되고 유전되는 비슷한 특성이 문화 진화와 생물 진화를 흥미롭게 비교하게 했을 것이다.

19세기의 관심은 큰 흐름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이어진다. 특히 기록과 증거가 없는 먼 과거에 있었던 인구집단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언어와 유전자 비교가 종종 쓰인다. 인구집단 이주와 접촉, 교류의 역사가 유전자와 언어에 화석 같은 어떤 흔적을 남겼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염기서열 데이터로 입증되는 유전자 분석에 비하면 언어 비교를 통해 인구집단의 먼 과거를 짐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와 생물학이 같은 수준에서 다뤄질 수 없고, 언어는 역사의 우연에 의해 더 쉽고 빠르게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주제의 연구는 관심을 끌면서도 때론 논란을 일으킨다.

최근에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자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언어와 유전자의 관계를 따져보는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스위스·일본 연구진은 아시아 동북부 지역 14개 인구집단의 유전체 정보와 11개 언어, 음악 문화(노래와 연주 양식)에 관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 전문 통계기법으로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 시베리아, 사할린 등지의 아시아 동북부는 유전자와 문화 다양성이 두드러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어, 일본어 외에 소수언어인 퉁구스어, 니브흐어, 축치캄차카어, 응가나산어 같은 이름들은 이 지역의 언어 다양성을 실감하게 한다.

연구에선 인구집단 유전자와 가장 크게 상관관계를 나타낸 문화 요소는 문법인 것으로 조사됐다. 낱말(어휘)이나 소리(음운), 음악의 차이는 인구집단의 유전자 차이와 낮은 상관관계를 보였지만 문법은 그렇지 않았다. 인구집단들의 문법 유사도 거리는 유전자 유사도 거리와 상당한 정도로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문법은 ‘깊은 역사’를 보여준다. 현재 어족의 틀이 갖춰지기 훨씬 전의 선사시대 흔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렇게 보면 유전자뿐 아니라 문법 유사도가 높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통 조상은 먼 과거에 유전자와 언어의 역사를 공유했을 것임을 이번 연구가 보여준다. 문화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은 따로 또 나란히 나아간다. 둘을 직접 비교해 결론을 내리는 데엔 한계도 뚜렷하다. 그렇더라도 유전자와 언어 비교는 먼 과거 역사를 짐작할 때 이런 방법이 없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실마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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