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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거는 한겨레] 독자와 선순환 관계를

등록 2021-10-17 18:42수정 2021-10-21 17:13

정은주 콘텐츠총괄

기사의 맨 끝을 보면 기자 이름과 함께 전자우편 주소가 나옵니다. 이 주소로 들어오는 보도자료, 취재 요청 등 봐야 할 자료가 꽤 있어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끔 독자의 글이 도착합니다. 기사를 비판하거나 개선할 점을 제안하는데, 그 어떤 경우든 저는 답장하는 편입니다. 그 답장이 인연으로 이어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편집장일 때인 지난 5월 독자 ㄱ씨가 잡지 처음에 나오는 칼럼 ‘만리재에서’의 글씨 크기를 키우고 색을 진하게 바꿔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의논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는 곧바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다들 반응이 긍정적이라서 그다음 호부터 디자인을 교체했습니다.

얼마 후 ㄱ씨가 답장을 보내왔는데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제 의견이 쓸모 있었는지, 금세 반영된 것이 놀랍네요. 글씨체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지 않음을 몇번 느꼈음에도 의견 제시는 못 했는데.” 한겨레가 론칭한 후원회원의 주주후원 신청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가장 사랑받고 많이 읽히는 매체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서 말이지요. 한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잡지 통권호 ‘쓰레기TMI’를 펴냈을 때도, 편집장으로 끝인사를 남겼을 때도 그는 연락해왔습니다. 이 칼럼이 나가면 다시 우리는 전자우편을 주고받겠지요.

‘말 거는 한겨레’라는 주제를 받고는 독자들과 마주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려봤습니다. ㄱ씨처럼 먼저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겨레21>이 설·추석 명절마다 선보이는 퀴즈큰잔치 응모 엽서에 응원의 글을 써주었던 독자들이 그렇습니다.

“교실 학급문고 칸에 <한겨레21>을 두고 제자들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미래의 ‘한겨레’ 독자가 되기를 바라는 독자입니다. 저와 같은 독자가 있다는 것을 비록 작지만 힘으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길을 곧게, 먼 길을 기쁘게, 된 길을 보람차게 걷는 한겨레라 믿고 있습니다. 파이팅!” “어떤 신문사는 ‘우리 신문은 퍼스트클래스와 회장님 좌석에 꽂혀 있는 신문’이라고 홍보하더군요. 한겨레는 보통사람의 옆구리와 가방에 있는 신문으로 남아주세요.” “제가 고3 때 처음 접했는데 벌써 27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30년을 넘어 50년, 100년의 역사를 기록해주세요.”

명절 때마다 수백통의 엽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이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을지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실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습니다. 독자는 기자의 소통에, 기자는 독자의 응원에 신뢰를 쌓아가는 선순환 관계가 형성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기자에 대한 반감이 유행처럼 퍼져나가면서 말 거는 독자가 줄어들고 저도 독자와 마주하는 게 두려워집니다. 오랫동안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언론에 돌아오는 ‘부메랑’이라,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조롱과 욕설을 들을 때면 자꾸만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독자를 만날 새로운 방법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런 움직임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활발합니다. 2020년 여름 미디어 스타트업인 뉴닉에서 인턴기자로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뉴닉은 국내외 시사·정치 뉴스를 친근한 대화체로 풀어서 아침마다 레터를 보내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것이 피드백 체계였습니다. 하루에도 1천건 이상의 피드백이 쏟아지는데 사려 깊고 구체적이라 뉴닉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하더군요. 독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용어 표현 등을 바꾸고 오류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고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여성 용어 가이드’를 제작했는데요. 기성 언론처럼 할머니라는 표현을 뉴닉이 썼더니 여성은 할머니고 남성은 선생님·운동가라는 표현을 써주냐는 피드백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뉴닉은 사과문을 올리고 ‘인권운동가’로 정정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독자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판단했답니다.

독자와 선순환 관계를 만드는 한겨레만의 길을 저도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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