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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종전선언, 남·북·미 꿈은 다르지만

등록 2021-10-21 17:54수정 2021-10-23 00:12

[특파원 칼럼] 황준범|워싱턴 특파원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채택한 10·4 남북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명문화돼 있다. 4항에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계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10·4 남북정상회담과 정상선언에 깊이 관여했다. 한반도 평화 구축에서 종전선언이 갖는 의미, 그리고 안정된 한반도를 차기 정부에 이어주는 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금 14년 전의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임기 말이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그 촉매제로 종전선언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유엔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한 것은 10·4 정상선언을 연상시킨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도 ‘종전선언’과 ‘3자 또는 4자회담 개최’가 들어가 있다.

2018, 2020년에 이어 유엔에서만 세번째인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전후해 정부는 이 문제에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외교안보라인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숨 가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총력전에도 남·북·미는 아직 각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종전선언은 북한과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이라고 강조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마중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이나 행동 없이 종전선언을 먼저 할 수 없다는 기류다. 정부 당국자들은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과 공감대가 넓어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2006년 11월 조지 더블유(W)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의 종료 선언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할 때부터 갖고 있던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 기조가 조 바이든 정부에서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북한은 종전선언에 조건을 달지 말라고 한다. 종전선언과 핵포기를 맞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종전선언에 앞서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철회돼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가격을 더 높인 모습이다.

종전선언은 성사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남·북·미의 근본적 인식 차이를 고려할 때, 이른 시일 안에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로서는 우선 미국부터 완전히 설득하고, 북한이 수용하게 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를 안고 있다. 임기 말이어서 국내외적으로 동력 확보에 제약도 있다.

여건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북한은 종전선언에 관심을 표하면서 어쨌든 이를 고리로 한·미와 관여해보려는 의사를 내비쳤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미 정부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내치지 않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다.

종전선언으로 가는 길이 쉽진 않지만 무작정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최대한 대화·평화 기류를 조성해 다음 정부에 넘겨주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북한 또한 한·미의 노력에 대화로 호응할 자세를 보여야 한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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