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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증오정치’를 키우는 ‘승자독식’

등록 2021-11-01 05:59수정 2021-11-01 09:08

거대 양당이 하는 일은 ‘승자독식’ 전쟁이다. 미국의 ‘승자독식’보다 훨씬 더 심하고 악성이다. 승자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내로남불은 기본이고, 마타도어와 음모론도 불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유권자들이 그런 ‘증오 마케팅’에 일방적으로 놀아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승자독식 전쟁’의 결과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국회의사당. 강창광 기자
국회의사당. 강창광 기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최근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전세계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적 갈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심하거나 매우 심하다”고 답한 사람이 90%를 기록해 미국과 더불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두 나라 모두 대통령제와 거대양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인지라, 갈등이 정치제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말해준 결과로 볼 수 있겠다.

대통령제와 거대양당제의 폐해에 대해선 우리는 이미 많은 논의를 해왔고,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개헌을 기대하자. 하지만 개헌이 이루어질 때까진 어쩔 수 없으니 계속 갈등을 고조시켜 나가자고 벼를 필요는 없을 게다. 정치적 갈등을 이용하거나 부추기는 ‘증오 마케팅’에 대한 비판을 멈출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나온 정치비평서가 유럽에서 나온 정치비평서보다 국내에서 많이 번역·출간되고 많이 읽히는 건 한국 사회의 미국 지향성 때문만은 아니다. 두 종류의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미국의 정치비평서가 훨씬 가슴에 더 와닿는다. 우리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란 타협을 수반할 수 있거나 수반해야 하는 행위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하는 세대를 키웠다… 우리는 독자와 시청자 대신 팬을 길들이고 있었다.” 지난 5월에 번역·출간된 <헤이트: 우리는 증오를 팝니다>에서 저자인 미국 언론인 맷 타이비가 한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증오의 10대 법칙’을 제시하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건 첫번째 법칙이었다. “의견은 단 두가지뿐이다.” 너무도 평범한 말인지라 좀 싱겁게 들리지만, 이게 바로 정치를 증오 발산의 마당으로 여기는 ‘증오정치’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분법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치 보도는 거의 대부분 이분법에 충실하다. 정치적 의견은 여당 의견 아니면 야당 의견이다. 여당 내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경우는 워낙 드문데다 그마저 팬으로 길들여진 여당 지지자들의 공격 때문에 곧 사그라들고 만다. 야권엔 여러 정당들이 있어 비교적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긴 하지만, 언론은 다른 목소리들을 ‘양념’ 정도로만 다룰 뿐 대체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고 하는 두 거대정당의 주장에 집중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하는 일은 ‘승자독식’ 전쟁이다. 미국의 ‘승자독식’보다 훨씬 더 심하고 악성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정치체제와 방식이 다른 연방제 국가라 승자독식의 완충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초강력 일극주의 국가로 그 어떤 완충효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자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내로남불은 기본이고, 마타도어와 음모론도 불사해야 한다.

지지자들까지 그런 전쟁에 참전하게끔 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은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언론은 논평을 통해선 그런 ‘증오 마케팅’을 비판하지만, 보도의 형식을 빌려 열심히 중계한다. 그게 독자들의 클릭 수를 높일 수 있는 첩경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유권자들이 그런 ‘증오 마케팅’에 일방적으로 놀아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승자독식 전쟁’의 결과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가장 중요한 게 지역적 이해득실의 문제다. 지역감정까지 가세했던 과거에 비해선 훨씬 나아졌다곤 하지만,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여전히 건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이해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순 없기 때문에 상대편 정당을 욕하는 증오의 표출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역적 이해득실에 미칠 수 있는 대통령 권력의 영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의 지방 나들이를 상기해보시라. 방문 지역에 뭘 해주겠다거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단 한번이라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실속도 없거니와 공약(空約)인 경우가 많지만, 지역민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게 지방의 현실이다.

대통령은 자원의 지역별 배분에 관여해선 안 된다. 대통령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 이는 작은 시작일 뿐, 이런 문제의식의 파급효과를 기대해보자는 것이다. 이걸 우리 모두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지역주의적 투표성향과 더불어 ‘증오정치’도 약화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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