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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000 정부’ 말고 ‘000 행정부’ 어떨까

등록 2021-11-01 16:13수정 2021-11-02 02:34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에 ‘바이든 행정부’는 있어도 ‘바이든 정부’는 없다. 왜 그럴까?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국가의 원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5월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떠나며 축하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7년 5월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떠나며 축하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성한용 선임기자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을 “행정권의 수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규정했다. 1960년 4·19 혁명 뒤 개정된 헌법은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며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국가의 원수’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의미였다. 행정권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조직된 국무원에 있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되돌렸다. 대통령을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규정했다. 1948년 헌법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1972년 유신헌법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국가의 원수는 실질적인 의미였다. 대통령은 삼권 분립을 초월한 독재자였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았다. 임기는 6년이지만 종신집권이 가능했다. 긴급조치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었다.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의 일괄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았다.

불행하게도 현행 헌법의 대통령 규정은 유신헌법과 같다.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되어 있다. 1987년 개헌이 미진했던 탓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개헌안은 ‘국가의 원수’를 삭제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한다”고만 했다. ‘대통령의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는 대통령이 다른 헌법기관을 초월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제왕적 대통령의 근거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언젠가 개헌이 되면 반드시 그렇게 고쳐야 한다.

여기에 더해 헌법의 편제를 아예 손질할 필요도 있겠다. 현행 헌법은 ‘4장 정부’에 ‘1절 대통령’, ‘2절 행정부’를 넣고, ‘2절 행정부’에 ‘1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2관 국무회의’, ‘3관 행정 각 부’, ‘4관 감사원’을 규정하고 있다.

‘4장 정부’라는 제목을 ‘4장 행정부’로 바꾸면 어떨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전체의 수장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에 불과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면 대통령 이름 뒤에 정부를 붙여 ‘000 정부’라고 부를 수 없게 될 것이다.

‘000 정부’라는 호칭의 부작용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렇지 않아도 승자독식 위험이 큰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욱 부추긴다. 여야는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극한투쟁을 마다치 않는다.

반대편에서 보면 ‘000 정부’라는 호칭은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몽땅 대통령 한 사람 탓으로 뒤집어씌워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반대 투쟁을 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과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들은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은 정권교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만 몰아내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선동한다. 거짓이다.

물론 지금 여당도 야당 때 그랬다. ‘이명박 정부’만 바꾸면, ‘박근혜 정부’만 몰아내면 정의로운 사회가 곧 도래할 것처럼 선동했다. 거짓이었다.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에 ‘바이든 행정부’는 있어도 ‘바이든 정부’는 없다. 왜 그럴까?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국가의 원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됐다. 개헌으로 ‘국가의 원수’를 삭제하기 전이라도 그 의미를 형식적이고 의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국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법부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언론에서도 이제는 ‘대권’이라는 단어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으로 잘못 해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000 정부’가 아니라 ‘000 행정부’를 놓고 싸우는 것이라면 극한투쟁을 할 이유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대선에서 ‘우리 편’이 졌다고 해외로 이민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권을 빼앗아오지 못하면, 또는 정권이 넘어가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현혹하는 정치꾼들의 선동도 효과가 떨어질 것이다.

1987년부터 벌써 여덟 번째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제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 정부’만 있으면 된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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