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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트랜스젠더 군인은 늘 있었다

등록 2021-11-01 16:38수정 2021-11-02 02:34

고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1월 22일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인으로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고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1월 22일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인으로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숨&결] 방혜린 ㅣ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듯, 우리나라의 현역 징집률은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확연히 드러나는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남성 10명 중 9명은 어떤 형태로든 병역을 수행하는 국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군에 많은 수의 성소수자가 복무한다는 사실은 결코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고 할 일이 아니다. 병역법상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이 장애는 아니기에,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징병신체검사에서 1급에서 3급 사이의 현역 복무 등급을 받는다. 비율을 고려하자면 얼마든지 그 속에 ‘숨어’ 입대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소수자가 군에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쉬이 간과하거나, 못 알아차리거나, 혹은 그게 대단한 이슈인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군인으로 복무 중 성별 정정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강제전역을 당해야 했던 트랜스젠더(MTF) 군인 고 변희수 하사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기자회견을 한 2020년 초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낸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하여 이것이 군사안보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병영관리상 문제는 없는지 등을 두고 떠들썩했다. 지난 10월7일 변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논란은 여전히 남겨진 과제다.

과연 변희수 하사가 한국군의 첫 트랜스젠더 군인이었을까? 트랜스젠더의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 성주체성 장애라는 질병으로 규정되어 군 면제 기준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던 것은 불과 1999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 성주체성 장애의 진단은 징병신체검사로는 드러날 수 없기에, 성주체성 장애를 굳이 진단받지 않거나 혹은 본인이 진단결과를 제출하지 않으면 지금도 군입대가 가능하다. 트랜스젠더들은 1999년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군에서 같은 전우로 복무하였고 또 복무 중이다.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이 자신의 군복무를 일종의 ‘썰’처럼 풀어 콘텐츠화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많은 수의 성소수자가 군을 거쳐갔지만 여전히 ‘숨겨져’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 우리 군 자체가 이 문제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성소수자 군인을 인식하는 수준의 깊이는 ‘부대관리훈령’에서 잘 드러난다. 부대관리훈령 7장의 제목은 ‘동성애자 장병의 복무’다. 해당 장은 동성애자와 성소수자, 성적소수자의 개념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고, 여전히 군에 복무하는 성소수자 군인을 ‘남성 동성애자’로 한정해 인식하면서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조항처럼 세팅되어 있다. 군의 인식에서 성소수자는 혐오세력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군에 동성애를 퍼뜨리는 군기저해자에 지나지 않는다. 252조에서 258조에 달하는 규정 중 게이가 아닌 성소수자 군인에게 적용할 만한 규정은 하나도 없다.

10월7일의 판결문은, 변희수 하사 사건뿐 아니라 군의 특수성 및 병력 운용과 성소수자의 기본적 인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가 차원에서의 트랜스젠더 복무에 대한 입법적, 정책적 과제가 남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1년이 지나, 승소 판결까지 난 지금 우리 군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조차 쓰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복무 중이다. 어느 한 명의 이벤트나 50만분의 1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곁에 단지 ‘숨겨져’ 있을 뿐이다.

어떤 존재는 명명됨으로써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인정하지 않고, 호명하지 않음으로써 회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군은 이번 판결을 통해서 드디어 드러난 존재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징병체계를 통해 불러들인 것도 군이다. 누구든 존재를 이유로 군에서 사망하는 일은 10월7일 이후로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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