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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시골생활

등록 2021-11-03 16:44수정 2021-11-04 02:32

아뿔싸! 마을 축제에 주민 장기자랑으로 벨리댄스팀이 참여한다는 거야. 면사무소에서 지원을 받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이니 면에서 주최하는 마을 축제에 프로그램을 선보여야 한다더라. ‘헐!’ 정말 헐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시작은 가벼웠다. 인원 모집에 애를 먹는 추진자에 대한 선의로 시작했지.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머릿수 하나 채워주자는 마음이었어. 일주일에 한번. 모름지기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유연함이 있어야 하거늘, 나이 오십이 넘도록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벨리댄스라니. 몸이 따라가지 않더라. 허리 돌리는 것은 그나마 비슷하게 흉내를 내지만 웨이브는 아무리 몸부림을 해도 따라갈 수 없었다. 벨리댄스 강사는 적당히 살집이 있었는데도 그 유연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지. 동작을 따라하는 순서도 잊어버리기 일쑤. 따로 연습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마음만 먹다가 끝이 났다.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여름에는 참여조차 어려웠다. 종일 밭에서 박박 기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꼼짝하기가 싫었어. 아로니아를 수확하는 8월은 더했지. 그렇게 좀처럼 엄마의 웨이브는 늘지 않았는데….

아뿔싸! 마을 축제에 주민 장기자랑으로 벨리댄스팀이 참여한다는 거야. 면사무소에서 지원을 받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이니 면에서 주최하는 마을 축제에 프로그램을 선보여야 한다더라. ‘헐!’ 정말 헐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마을 축제일인 10월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겁이 났다. 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들은 너희들은 키득키득 웃었지. 재밌게 해보시라고 응원해주기도 했지만 자신이 없었어. 특히나 ‘위~ 아래, 위~ 아래’ 부분은 더 어려웠다. 어렵다고 하는 것은 움직임이 생각대로 안 나온다는 거야. 상대적으로 ‘사랑의 트위스트’ 곡은 수월한 편이었다. 벨리댄스를 배우는 사람이 다섯명밖에 안 되니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 ‘이 나이에?’ 하면서 꼬박 일주일을 연습에 매달렸다. 잘하지 못해도, 비슷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순서만 틀리지 않도록 연습했다.

그렇게 마을 축제인 효 잔칫날에 벨리댄스를 추었다. 무대에 서려면 입체 화장이 필요하다는 강사 말에 진한 화장도 마다하지 않고 얼굴을 맡겼다. 동네 사람들에게조차 벨리댄스로 발표회에 참가한다고 말을 못했다.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알렸다. 사진은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2015년에 있었던 일. 포개져 있던 추억 속에서 꺼내보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삶을 향기롭게 하려면 지혜가 꼭 함께해야 하는 것 같아. 나이가 들어서도, 소소한 일상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괴산군 문광면의 주민자치 프로그램으로 노래교실을 추천했고, 채택되었지. 그 추천의 책임을 온전히 지기 위해 일주일에 두 시간씩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노래교실에서 맘껏 소리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쓰는 귀한 시간이 되겠단 기대도 해서, 많은 참여자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정작 함께 하고 싶은 할머니들은 노래를 못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아니라, 지난 한 주일 또 지나가버린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한 ‘스스로’에게 주는 상으로 여기시면 어떠냐며, 할머니들께 함께 노래교실에 나가자고 했어.

시절이 시절인지라. 어머니들이 으레 그러셨던지라. 평생을 일하는 데만 시간을 쓰셨던 할머니들은 그 시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려운 시간을 내주신 할머니들이 참 고와서 아로니아 수확이 바쁜 8월을 빼고는 꼬박 시중들기를 마다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일년을 넘겼을 즈음에 가정의 달, 5월이 되었고. 다시 돌아온 문광면의 효 잔칫날에 무대 공연을 하게 되었어. 문광면의 22개 마을이 한자리에 모이는, 그야말로 잔칫날이야. 모두 26명의 노래교실 회원들은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연습을 했고 준비한 두 곡을 멋지게 불러 공연을 마쳤어. 참여한 모든 분들이 즐거워했다.

노래교실은 2년 연속 효 잔치에서 공연을 했다. 빨강 파랑 반짝이 조끼는 빛났고 민요를 부를 때는 흰 저고리, 검정 치마가 예뻤다. 무대 앞줄 정중앙에 팔십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가 자리를 빛냈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유쾌하고 흥겨웠다. 문광면 송년회에서는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지. 코로나가 창궐하기 2년 전의 이야기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을 때는 외출을 조심하고 집 안에서 수세미를 떴어. 환경에도 좋고, 코로나를 이기는 슬기로운 생활이라 생각했지. 50여개를 떠서 동네 분들에게 모두 나눠드렸단다. 룰루랄라, 시골생활을 즐겁게 하는 소소한 도전이다.

가을 햇살을 따갑게 받으며 이틀 내내 들깨를 털었다. 그야말로 탈탈 털었다. 또 이틀은 검불을 걸러 내야 할게다. 정선기를 사용할 만큼 양이 많지 않으니 그저 몸이 감당해내는 것이 대견하구나.

단풍이 곱다.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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