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지난 9월26일 숨진 이우석(26)씨의 어머니 김영란(50·맨 왼쪽)씨와 아버지 이동수(58·맨 오른쪽)씨가 지난달 26일 <한겨레>와 만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무법인 디라이트 제공
최예린 전국팀 기자
지난 9월26일 숨진 채 발견된 이우석(26)씨는 대전시 새내기 9급 공무원이었다. 이씨 부모는 아들이 지난 7월 새 부서에 배치된 뒤 ‘교묘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한다. ‘일찍 출근해 과장 커피와 물을 챙기라’는 선배의 말을 따르지 않은 뒤로 팀원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씨 어머니 김영란씨는 “업무적으로도 협조가 제대로 안됐다. (새로 맡게 된 일이어서)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네가 알아서 하라, 지침 보고 하라’고 할 뿐이었다”며 “아들은 적절한 직무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과중한 업무 부담과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말라갔다”고 오열했다.
숨지기 전 이씨는 어머니에게 “내일이라도 다른 부서에 출근하면 감쪽같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시청 안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이씨는 부모에게 자신의 상태가 “소문날까 두렵다”고 했다고 한다. 우석씨는 왜,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지난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난 이씨 동기들은 고충 상담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폐쇄적인 시청 분위기를 말한다. “고충(상담)을 쓰려고 하면 좀 나약하고 일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고충을 쓰면 어떻게든 자기한테 해로 돌아온다”, “고충을 쓰면 팀장님 과장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예의라는 문화가 있다”, “다음 정기인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석씨가 숨지고 열흘 뒤인 지난달 6일 대전시는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갑질에 해당하면 관련자 징계 등 조처를 하겠다. 조사 뒤 변호사·노무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갑질심의위원회를 통해 갑질 여부를 판단한 뒤 수사가 필요하면 경찰에 의뢰하겠다”(최진석 대전시 감사위원장)는 다짐이 뒤따랐다.
하지만 한달가량 지난 지난 3일, 시는 감사 중단을 발표했다. 유족과 시청 공무원들 사이 말이 많이 엇갈려 진상규명이 어렵기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이럴 바에 왜 애초 감사를 하겠다고 나섰냐’는 질문에 최 위원장은 “유족이 먼저 감사하고 나중에 경찰 수사의뢰를 검토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이게 유족 핑계를 댈 사안일까. 유족들은 반발했다. “수사기관 조사는 몇달 내지는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감사위가 수사기관에 의뢰한다는 말로 책임을 떠넘겼다.”
우석씨 동기들도 절망했다. “어이가 없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나다”, “이렇게 뉴스도 나오는데 부서원 누구 하나 직위해제든 무슨 조처도 없고, 나 포함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인데 이렇게 처리되는 거 보니 앞으로 정말 무슨 기대도 하지 말아야지 싶다”. 사람이 목숨을 던져도 변하지 않을 조직이라는 체념과 절망이 대화창을 메웠다.
이런 분위기는 대전시청만의 일일까.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6월 직장인 1000명을 조사했더니 32.9%가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참거나 모르는 척한’ 경우가 68.4%에 이르렀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2.3%,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27.2%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오랜 침묵 끝에 우석씨 동기 중 한명이 답했다. “내가 죽어야 이 사람들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해할까라고 느낄 만큼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황까지 갔었다.”
이 글을 마감하던 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우석씨 죽음과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구체적 규정과 업무상 재해 인정 부분에 있어 제도 개선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대전시가 수사의뢰한 사건은 대전서부경찰서가 맡게 됐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와 경찰 수사는 이 사건 진실규명과 공직사회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또 다른 이우석을 구해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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