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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유네스코의 경고와 군함도

등록 2021-11-18 18:34수정 2021-11-20 15:41

일본 나가사키에서 서쪽으로 약 4.5㎞ 떨어져 있는 군함도 모습. 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일본 나가사키에서 서쪽으로 약 4.5㎞ 떨어져 있는 군함도 모습. 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김소연|도쿄 특파원

지난 6일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 제막식이 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서둘러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나가사키에서 서쪽으로 약 4.5㎞ 떨어져 있는 군함도를 가기 위해서였다. 유네스코의 ‘경고장’이 나온 뒤 군함도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기대치는 낮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국제기구인 유네스코는 지난 7월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권고한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결정문을 채택했다. 2015년 7월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으로 등재된 23곳 중 7곳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는데, 일본이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군함도로 불렸던 섬 하시마다.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본 코로나19 감염자가 크게 감소한 영향인지 군함도로 향하는 2층 배는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부부, 연인,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등 다들 즐겁고 들뜬 표정이다. 군함도 여행 상품은 굉장히 상업적이었다. 배 좌석 위치에 따라 프리미엄, 우선순위, 보통권으로 나뉘고 서비스도 달랐다. 섬으로 가는 40분 동안 전문 가이드는 군함도의 역사, 건물의 특징,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상황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섬에 내리면 약 30~40분 동안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극히 일부의 건물만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제약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100년도 넘은 군함도의 건물이 신기한 듯 사진 찍기에 바빴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비극적인 이곳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즐거운 명소이자 돈벌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배를 타고 섬을 둘러본 약 2시간 동안 ‘한국’이란 단어는 딱 한번 나왔다. 일본인 가이드는 군함도에 내려 건물을 설명하면서 “이곳에서 일본인과 함께 한국인, 중국인도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게 다였다. 그날 배를 탄 사람들에게 나눠준 군함도 팸플릿에도 ‘강제동원’, ‘차별’이라는 말은커녕 ‘조선인’, ‘한국인’이란 단어가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착잡했다.

과거의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만 가도 군함도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자료관은 양심적 일본인들이 실천적 평화운동가로 평생을 산 오카 마사하루(1918~1994) 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5년 만든 곳이다. 오카 목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2층 전시관에는 나가사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중국인 피해자와 원폭 희생자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15살 때 군함도 탄광에 끌려갔다가 미쓰비시조선소로 옮겨진 뒤 피폭까지 당한 고 서정우씨의 사연도 전시관 한면을 채우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김부자 도쿄외국어대학 교수는 지난 8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확고한 사과와 사실 인정 등으로 피해자의 존엄성이 회복된다면, 과거의 피해는 바꿀 수 없지만 인권이 존중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역사적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좀 더 나은 미래 때문이라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12월1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일본에 충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일본에 그리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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