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정대건|소설가·영화감독
최근에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쉽게 피로해지고 기본적인 체력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미생>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은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길러라.” 요즘 유튜브에도 운동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으니 ‘홈 트레이닝’을 하면 된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지난 몇년 동안 말로만 운동한다던 나였다. 운동은 체육관에 가는 게 절반이라는 말처럼 의지의 문제였고 결국 나는 돈을 내고 의지를 사야만 했다. 핑계를 대자면 오랜 시간 운동을 미루고 그 의지를 깎는 게 있었으니, 운동 등록에 앞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비밀리에 알아내야 하는 가격이었다.
헬스장에 전화를 걸어 가격 문의를 하면 직접 와서 상담을 받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의지를 가지고 시간을 내서 찾아가면 비밀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파일을 펼쳐 가격을 보여준다. 다른 곳도 더 알아보겠다 하니 가격이 부담되느냐며 민망한 상황을 만들고 흥정을 하기도 한다. ‘시가’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가격이 널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소비자가 그런 식으로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 이런 불편을 해결해줄 체육시설업 가격표시제가 9월부터 시행된다고 했다가 연기되었다. 일부 업체는 가격표시제가 경쟁을 부추기고 수업의 질이 떨어질 것이 염려된다고 말한다는데, 그 말에 동의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업계의 투명한 경쟁은 대부분 좋은 결과로 다가온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는 밈이 있다. 불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사려고 용산 전자상가에 가면 판매자들이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하고 묻던 시절이 있었다. 정보가 없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물음이다. 2010년대에 와서 인터넷에 최저가가 공개되고부터 더 이상 소비자들은 ‘호갱’이 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간혹 통신사 대리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워 울분에 차게 만드는 뉴스들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정보의 비대칭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쁘지만 피고용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개인적인 연봉과 같은 것은 민감한 비밀이지만 대략적인 가이드와 기준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예술계는 그 기준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조차 폐쇄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 창작자들이 모이면 돈 얘기를 하게 되는 것도 이런 정보가 너무 불투명한 게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는 데 얼마나 받는가 대략 업계의 평균이 알려져 있고 그것이 잘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건 얼마 받아?” 하고 서로 물을 일도, 궁금할 일도 아닐 것이다. 후려치기 당한 경험이 있다 보니 정보를 알아야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표준계약서가 나오는 등 나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보는 부족하다. 예전에 어느 작가님께서 작가들이 데뷔하면 업계 선배가 모아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모든 분야의 신인 창작자들에게 이런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계도 업계 평균이라는 게 있는데 인터넷 어디에서도 정보를 구하기 어렵기에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대략 어느 정도인지 알고 왔다고 속 시원히 말하고 싶어도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다면 깜깜해진다. 가령 시나리오 각본료는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드라마나 연극의 원작료는 어느 정도를 받아야 하는지, 아예 기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대부분 상대 쪽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가게 된다. 신인 입장에서 거절할 여유도 없으니 말이다. 원고료나 강사료 기준에 대한 발표가 가이드가 되어주듯,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