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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배변 봉투와 휴대용 재떨이

등록 2023-06-29 19:09수정 2023-06-30 14:59

플라스틱 필름통을 이용한 휴대용 재떨이. <한겨레> 자료사진
플라스틱 필름통을 이용한 휴대용 재떨이. <한겨레> 자료사진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장마철이 다가오는 와중에 담배꽁초가 빗물받이를 막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사진 속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에 꽉 막힌 빗물받이 구멍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여름 그렇게 물난리를 겪고도 나아진 모습이 없다고, 걱정스럽다는 의견들이 있다. 온라인에 담배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기만 하면 한바탕 성토대회가 벌어진다. ‘담뱃값을 엄청나게 올려야 한다’ ‘꽁초를 버리면 싱가포르처럼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려야 한다’ ‘아예 꽁초를 주워 와야만 담배를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등 여러 말들이 나온다.

대부분 분개의 감정이지만 일부는 혐오의 배설처럼 느껴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역한 냄새를 맡고 발암물질을 들이마셔야 한다니, 싫어하는 사람의 처지도 이해된다. 나도 굳이 분류하면 비흡연자에,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에게 열을 올리는 쪽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 헌터>를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장면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비행기 안에서의 당당한 흡연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70년대 말 미국이다. 우리나라도 80년대 버스와 식당, 사무실에서 흡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개월간 생활하고 돌아온 이탈리아는 흡연자들의 천국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환경미화원도 담배를 피우며 빗자루질을 했고, 유아차를 모는 부모도, 빵 진열대 앞의 점원도 담배를 피웠다. 이탈리아에서 나는 그들의 흡연에 열 올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혼자 열 올리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한국의 풍토가 흡연자들에게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결국 시민의식이라는 것은 관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보행 흡연자의 꽁초 투기를 목격한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한국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흡연 문화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무엇인가? 문제는 그 합의 수준에 대한 괴리에서 발생하는 것일 텐데, 거기에 내가 매번 열 올리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흡연자인 내가 흡연시설 부족 문제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꽁초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흡연자에게는 쓰레기를 마구 버릴 수 있는 특권이라도 주어지는 것일까?

흡연자인 한 지인은 담배꽁초는 길바닥에 마구 버리지만,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막대기와 봉지는 쓰레기통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들고 걷는다. 꽁초를 버리는 그가 특별히 미개하거나 불량한 마음을 품어서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게 다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배변 봉투를 잘 챙기는 애견인이기도 하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배변 봉투를 가지고 다니면서 강아지의 변을 수거하지 않으면 미개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흡연자들에게는 엄연히 ‘휴대용 재떨이’라는 것을 판매한다. 휴대용 재떨이 판매처의 사용후기를 보면 내가 목격하지 못한 양심적인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흡연자 가운데 휴대용 재떨이 사용자는 극히 일부인 듯하다.

무작정 담뱃값만 올리는 것보다는 담배 구매자에게 휴대용 재떨이를 의무적으로 함께 판매하면 어떨까. 애견인은 강아지가 생성한 변을 치우는 게 당연한데, 왜 일부 흡연자들은 본인이 생성한 ‘마땅히 치워야 할’ 것을 거리에 마구 버리는가? 애견 카페에도 ‘제발 산책하며 똥 좀 치우세요!’라며, 애견인들 욕먹게 하지 말라고 성토하는 글이 올라온다. 결국 흡연자 당사자들 사이에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다. 물론 개똥을 치우지 않는 것도, 담배꽁초 무단 투기도 모두 엄연한 과태료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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