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민 선대위-청년과 함께 만드는 대한민국 대전환’에서 취업준비생, 워킹맘, 신혼부부, 청년창업자의 ‘걱정 인형’을 받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ㅣ선임기자
승자독식 대통령 선거는 도박판을 닮은 데가 있다. 끝까지 따라간 2등이 가장 많이 잃는다. 패배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역사의 죄인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이회창 전 총재, 정동영 전 의장은 성공한 정치인이다. 정치에 입문해서 투자한 것보다 많은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실패한 정치인처럼 비치는 것은 대선에서 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여당 후보였다. 임기 5년 대통령제에서 여당 후보가 대통령 덕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별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차별화한 이회창, 정동영 후보는 졌고, 차별화하지 않은 노무현, 박근혜 후보는 이겼다. 상상과 현실은 종종 반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정치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일 것이다. 10월10일 후보가 됐는데 한달이 넘도록 허송세월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격차가 벌어지자 화들짝 반응했다.
“부동산 문제, 청년과 무주택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을 사과했다.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지 않고 내로남불식 남 탓이나 ‘전세계적 현상’이라는 등 외부 조건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 것”을 반성했다.
맞는 태도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안 된다. 민주당과 선거대책위원회를 쇄신하고 혁신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두가지 때문이다.
첫째, 권력투쟁 경험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2년 실패와 2017년 성공 사이에는 2015년 전당대회가 있었다. 대표로서 겪은 치열한 당내 투쟁 경험은 고스란히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대선 후보는 때로 얼굴이 두껍고 잔혹해야 한다.
둘째, ‘이재명의 사람들’이 없다.
2012년, 2017년 문재인 후보에게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훈련받은 정예 참모들이 수두룩했다. 지금 이재명 후보에게는 그런 인력이 없다. 민주당의 날고 기는 선거 전문가들은 다 ‘친노-친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2002년 대선을 앞둔 노무현 후보의 처지는 지금 이재명 후보와 비슷했다. 노무현재단에서 엮은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내에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을 극복하려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소위 차별화 전략을 쓰자는 말이었다. 나는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상 그런 정치쇼는 옳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막 선출된 후보와 민주당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대목도 있다.
“1987년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임기 후반에 인기가 없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들은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선거 전략을 썼다. 대통령들은 집권당을 떠났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되었다. 책임정치의 원리에 어긋나는 아주 나쁜 관행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비극이다.”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워낙 달랐기 때문이었다. 세대도 달랐고, 고향도 달랐고, 스타일도 달랐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존재 자체가 차별화였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생, 이재명 후보는 1964년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출신이고, 이재명 후보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비형 리더십이고, 이재명 후보는 공격형 리더십이다.
그래서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과감하게 뛰어넘어야 한다. 차별화가 아니라 극복해야 한다. 영어 비욘드(beyond)는 ‘그 너머’라는 뜻이다.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 그 너머’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 청년 일자리 정책 실패 등 문재인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서는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야 한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책 노선의 과감한 수정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력 대 세력, 당 대 당 대결 구도로 가면 민주당이 이기기 어렵다. 정권교체 여론이 너무 높은 탓이다. 인물 대 인물 대결 구도로 가면 이재명 후보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 결국 대선은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 갈 일꾼을 뽑는 민주주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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