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 미디어전략실장
얼마 전 페이스북이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꿔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는 점에서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입니다. 흔히 브랜드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니까요.
요즘 들어 부쩍 브랜드라는 세 글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미디어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입니다. 그간 언론은 정작 브랜드와는 ‘담을 쌓고’ 지내왔다는 게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일수록 더욱 그랬죠. 단지 좋은 기사(콘텐츠)를 쓰기만(내보내기만) 하면 소비자가 으레 (자신들을) 다 알아준다는 편협한 생각과 오만한 태도가 너무 확고했습니다. 브랜드를 핵심적인 전략 자산의 하나로 다루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던 거죠.
이런 착각과 패착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거침없이 빨아들이는 플랫폼 전성시대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죠. 속성상 플랫폼과 브랜드는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려운 숙명의 짝입니다. 플랫폼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커질수록 브랜드의 존재감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이라는 너른 마당에선 개별 브랜드 하나하나의 대체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2017년 자사 제품에 ‘아마존이 직접 판매하는’(sold by Amazon)이란 꼬리표를 붙이면서까지 아마존 온라인몰에 입점했던 나이키가 2년 만에 아마존과 결별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듬해인 2020년엔 같은 길을 걸었던 가구 업체 이케아마저 나이키의 뒤를 따랐습니다. 브랜드 ‘파괴’라는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더군다나 디지털 시대엔 언론의 대표상품인 뉴스 역시 수많은 콘텐츠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한겨레의 경쟁 상대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도 동종 업계의 다른 언론사부터 먼저 떠올릴 테지만, 정작 2021년 한겨레의 경쟁 상대는 사람들의 일상을 찾아가는 ‘모든 콘텐츠’라는 말이 정확할 겁니다. 디지털 세상의 진면목은 모든 칸막이가 사라지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게임 따위를 가르는 시장 획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셈이죠. 다종다양한, 무한팽창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한겨레가 어떤 브랜드로 자리매김되어 있는지 숨을 고르고 뒤돌아보게 만드는 배경입니다.
결국 한겨레와 같은 언론의 브랜드는 콘텐츠와도, 저널리즘과도 반드시 꼭 포개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고품질의 콘텐츠와 가치 있는 저널리즘의 문제와는 결이 조금 다른, 말하자면 사랑받고 매력적인 브랜드의 영역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얘기겠죠. 이 시대의 화두인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과제 역시 단순히 콘텐츠나 저널리즘이라는 단일 잣대만이 아니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까지 아우르는 좀 더 넓은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콘텐츠가 독자의 니즈(필요)에 화답해야 하고 저널리즘이 가치와 세계관에 뿌리를 둔다면, 아마도 브랜드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채워줘야 하는 과제와 맞닥뜨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나(독특함)와 우리(소속감)라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욕구 말이죠. 브랜드 신뢰도,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비밀입니다.
브랜드 컨설팅 분야에선 미래에 발생할 이익의 현재 가치를 따져 브랜드 자산의 크기, 곧 브랜드 ‘가치’를 따집니다. 시장 영향력 및 지배력, 생존능력, 시장 환경,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 브랜드 소유권 등 다양한 요소를 수치화해 가격을 매기기도 하죠. 어쩌면 이 시대의 언론에 브랜드란 세상을 바꾸는 콘텐츠의 품질과 저널리즘의 희망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 ‘지금, 여기’의 일상에 소리 없이 스며드는 신선한 공기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한겨레 브랜드 전반에 관한 실태조사를 해보려 합니다. 무엇이 모자란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겠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의 오늘을 찾아온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한겨레라는 브랜드는 어떤 존재인가요. 과연 한겨레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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