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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오촌 아재

등록 2021-11-29 04:59수정 2021-11-29 09:21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옛 시골에선 겨울에 산문이 열린다. 이웃들이 함께 산에 올라 땔감을 한다. 하지만 어찌 한날한시에 다 모일 수 있으랴. 노가다판에 가 있기도 하고 낫질하다 손가락이 상해 못 나오기도 하지. 으스름 저녁 이고지고 온 나무를 마당에 부리고 나면, 분배가 문제. 식구 수에 따라 나누자니 저 집은 한 사람밖에 안 나왔다고 투덜. 똑같이 나누자니 저 집 나무는 짱짱한데, 내 건 다 썩어 호로록 타버리겠다고 씨부렁.

거기에 오촌 아재 등장. ‘오촌’은 ‘적당한 거리감’의 상징. 막걸리잔 부딪치며 ‘행님 나무가 짱짱하니 고 정도로 참으쇼.’ ‘저 동상네 아부지가 션찮으니 몸이라도 지지게 좀 더 줍시다.’ 한다.

다툼은 쪼잔한 데서 시작된다. 우리 동네에서도 마을정원 일을 해야 했다. 방역조치 때문에 화요일과 금요일 반으로 나눠 일을 했다. 마치고 점심을 먹자니 화요일 반에선 밥 먹는 데 돈 쓰지 말라며 사양, 금요일 반은 일 마치고 차 타고 퇴비 사러 갔다 오다 늦은 점심을 먹은 게 탈이었다.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주었네, 친한 사람들끼리 먹었네 하며 마을 여론이 두 갈래로 쩍 갈라졌다.

자율적 공동체가 역동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네 가지 유형의 인물이 필요하다(가타리, <미시정치>). 어린이(미래), 국가(외부 자원), 이웃 주민(동료), 그리고 대안적 인물(상상). 그는 자유의 공간을 창조하는 인물이자 당면한 사태 너머를 보는 사람이다. 험담이 퍼져나가지 않게 움직이며 활로를 찾아낸다. 그의 가장 큰 역할은 ‘말’을 건사하는 일이다. 어디든 오촌 아재 같은 사람이 있으면 흥하고, 없으면 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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