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영어처럼 한국어도 옆으로 풀어쓰면 어떨까. 낯설겠지만 아래 시를 읽어보자.
ㅈㅜㄱㄴㅡㄴ ㄴㅏㄹㄲㅏㅈㅣ ㅎㅏㄴㅡㄹㅇㅡㄹ ㅇㅜㄹㅓㄹㅓ
ㅎㅏㄴ ㅈㅓㅁ ㅂㅜㄲㅡㄹㅓㅁㅇㅣ ㅇㅓㅄㄱㅣㄹㅡㄹ (윤동주, ‘서시’).
나는 지금도 지인들한테 보내는 이메일에 ‘ㄱㅣㅁㅈㅣㄴㅎㅐ’라 쓰곤 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음소문자인 한글의 또 다른 표기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풀어쓰면 좋은 점이 있다. 영어 필기체처럼 글씨를 더 빨리 쓸 수 있고, 컴퓨터 글자체(폰트) 개발에도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다. ‘걎, 걞, 겏’이나 ‘뷁’처럼,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수는 무려 1만1172자이다.(한자에 이어 세계 2위!) 이 중에서 흔히 쓰는 음절 2350자는 반드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 ‘ㅇ아안않우울오올의궁굉’에 쓰인 ‘ㅇ’이 다 다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풀어쓰기를 하면 ‘ㅇ’을 하나만 디자인하면 된다. 폰트 디자이너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 최현배(남), 김두봉(북)이 풀어쓰기를 주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문자 개혁의 종착지는 풀어쓰기였다. 문익환 목사도 감옥에 있으면서 풀어쓰기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익숙한 모아쓰기에 정통성을 부여한다. 현실이 궁극의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결여나 불합리로 보지 않는다. 못 미치면 못 미치는 대로 그 속에서 이치를 찾고 습관을 들인다. 문화는 논리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사람의 발자국이 쌓여 길이 만들어지면 꼬부랑길일지라도 그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