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풀어쓰기

등록 2021-12-05 16:18수정 2021-12-06 02:32

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영어처럼 한국어도 옆으로 풀어쓰면 어떨까. 낯설겠지만 아래 시를 읽어보자.

ㅈㅜㄱㄴㅡㄴ ㄴㅏㄹㄲㅏㅈㅣ ㅎㅏㄴㅡㄹㅇㅡㄹ ㅇㅜㄹㅓㄹㅓ

ㅎㅏㄴ ㅈㅓㅁ ㅂㅜㄲㅡㄹㅓㅁㅇㅣ ㅇㅓㅄㄱㅣㄹㅡㄹ (윤동주, ‘서시’).

나는 지금도 지인들한테 보내는 이메일에 ‘ㄱㅣㅁㅈㅣㄴㅎㅐ’라 쓰곤 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음소문자인 한글의 또 다른 표기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풀어쓰면 좋은 점이 있다. 영어 필기체처럼 글씨를 더 빨리 쓸 수 있고, 컴퓨터 글자체(폰트) 개발에도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다. ‘걎, 걞, 겏’이나 ‘뷁’처럼,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수는 무려 1만1172자이다.(한자에 이어 세계 2위!) 이 중에서 흔히 쓰는 음절 2350자는 반드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 ‘ㅇ아안않우울오올의궁굉’에 쓰인 ‘ㅇ’이 다 다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풀어쓰기를 하면 ‘ㅇ’을 하나만 디자인하면 된다. 폰트 디자이너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 최현배(남), 김두봉(북)이 풀어쓰기를 주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문자 개혁의 종착지는 풀어쓰기였다. 문익환 목사도 감옥에 있으면서 풀어쓰기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익숙한 모아쓰기에 정통성을 부여한다. 현실이 궁극의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결여나 불합리로 보지 않는다. 못 미치면 못 미치는 대로 그 속에서 이치를 찾고 습관을 들인다. 문화는 논리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사람의 발자국이 쌓여 길이 만들어지면 꼬부랑길일지라도 그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계엄 거부하고 법무부 사직서…난 반국가세력일까 [류혁 특별기고] 1.

계엄 거부하고 법무부 사직서…난 반국가세력일까 [류혁 특별기고]

‘전두환 고스톱’과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 [정의길 칼럼] 2.

‘전두환 고스톱’과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 [정의길 칼럼]

해방 80년,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 [김누리 칼럼] 3.

해방 80년,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 [김누리 칼럼]

[사설] ‘내란 특검’에 거부권 검토는 국민 뜻 배반하는 행위다 4.

[사설] ‘내란 특검’에 거부권 검토는 국민 뜻 배반하는 행위다

‘탄핵 트라우마’ 국민의힘이 8년째 모르는 한 가지 5.

‘탄핵 트라우마’ 국민의힘이 8년째 모르는 한 가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