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언어공동체란 뭔가? 쉽게 쓰지만 답하긴 어렵다. 사전엔 ‘같은 말을 쓰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 집단’이라고 눙치려 한다. 도대체 ‘같은 말(한국어)’이란 뭔가? 분명 강원도 말과 제주도 말이 다르고, 10대의 말과 80대의 말이 다르고, 아나운서의 말과 농부의 말이 다른데. 사람마다 쓰는 어휘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장소, 관계, 기분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른데.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공동체인가?
그렇다면 이 말은 구체적인 언어사용보다는 추상적인 언어질서, 규범, 규칙 같은 걸 뜻하는 듯하다. 이 추상적인 언어질서는 당연히 ‘한국 정신’처럼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가장 잘 담는 그릇이다. 세대와 성별, 계급과 지역에 따라 작은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언어를 물려받았다. 하나의 언어는 거역하거나 피할 수 없다. 운명처럼 주어졌다.
이렇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정’이거나 ‘상상’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가 많긴 하지만, 언어공동체란 말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언어공동체를 ‘민족’이나 ‘국가’라는 거창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개인의 언어적 실천과 상호작용이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게 된다. 이를 뒤집어버리자. 이 말을 역동적이고 구성적이며 참여적인 의미로 재활용하자. 우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언어공동체는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의지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늘이 아닌 땅에,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