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누군가 내게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뚜렷하게 말할 만한 종목이 따로 없다. 야구는 어느 팀이 어느 연고지인지 잘 모르고 롯데 자이언츠의 연고지가 부산인 정도만 아는 수준이다. 그나마 축구에 관심이 있는데 경기를 챙겨 보거나 특정 팀을 응원하지는 않고 손흥민 선수의 골 장면을 찾아보는 정도의 라이트팬이다. 국내 프로축구인 K리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스포트라이트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2부 리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적었다.
그러나 최근 한 일본인 선수 때문에 나와는 전혀 연고도 없는 K리그2 팀인 대전 하나시티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10월10일, 이 팀 소속 선수인 마사(이시다 마사토시)가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수훈 선수로 뽑힌 후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긴 한국어로 인터뷰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축구 인생을 통해서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매 경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기가 있고, 어쨌든 승격 그거 인생 걸고 합시다. 합니다.” 이 가슴 뜨거워지는 인터뷰는 화제가 되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많이 회자되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진 선수와 팀이라니, 그 여정을 응원하게 됐다.
많은 이들이 이 인터뷰에 감동받고 응원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마사는 일본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혹했다. 그는 J2리그와 J3리그, 하부 리그 임대 생활을 전전하다가 결국 한국의 2부 리그까지 오게 됐다. 그런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칭하는 데서 느껴지는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 프로 선수로서 첫 해트트릭을 달성한 뒤 매 경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자세, 승격에 인생을 걸겠다는 비장한 각오. 나는 지금 무엇에 인생을 걸고 매진하는가 돌이켜보게 만드는 인터뷰였다. 국적을 넘어서 한 스포츠 선수의 열정에 대해 응원하게 된 것이다.
K리그1의 강원FC의 강등과 K리그2의 대전 하나시티즌의 승격을 두고 두번의 플레이오프 시합이 펼쳐졌다. 대전은 1차전에서 1 대 0으로 승리하면서 승격에 더 가까워졌다. 강원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도 대전은 선취골을 넣었다. 대전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결과적으로 2차전에서 강원이 4 대 1로 역전하면서 대전의 K리그1 승격 도전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 승리한 팀이 올라간다는 징크스를 깨고 4분25초 사이에 3골을 터트린 강원의 역전도 드라마인 것이다. 마사를 포함한 대전 선수들은 분함에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승격에 가까이 다가갔고 주목과 응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좌절하기 마련이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열심히 노력했는데 합격자 명단에 없을 때, 정말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때. 마사는 자신을 위해서도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서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선수들을 비난하는 팬은 없을 것이다. 다리에 경련이 생길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흔히들 스포츠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한다. 패배자에서 도전자가 된 그를 응원한다. 인생을 건 승격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했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화제가 되었던 “승격 그거 인생 걸고 합시다”보다도 “매 경기 인생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에 방점을 두고 싶다. 연말을 맞이하여 새해 다짐에 더없이 좋은 자극과 감동을 준 그에게 고맙다. 매일, 매 순간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