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원제 | 논설위원
김건희씨 ‘허위 이력’ 의혹이 대선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한숨과 탄식을 불러내는 일이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한뼘쯤 경쾌한 구석도 있다. 쏟아진 풍자와 유머에 ‘ㅋㅋ’ 웃게 되는 경우다.
김씨 의혹과 관련한 우스개는 대체로 같은 패턴으로 변주됐다. 대표적으로 ‘차범근 축구교실 다니고 축구선수로 기재’, ‘해병대 캠프 1주 다녀와서 귀신 잡는 해병 제대로 기재’가 있다. ‘대선 떨어진 뒤 영부인 경력 쓰실 분’이란 말에 최근 한 주 가장 빵 터졌다는 후기도 있었다.
이런 패러디는 김씨의 ‘허위 이력’ 기재가 일정한 방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과 관련이 있다. 김씨는 15년여 동안 5개 대학에 ‘허위 이력’을 내 강사와 겸임교수로 채용됐다.(한국폴리텍대학에도 5년간 출강했지만, 여긴 채용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김씨는 자신이 얼마간 관여했던 경력을 교묘하게 부풀리는 방식을 종종 썼다. 2004년 서일대 시간강사로 지원할 때는 2년제인 한림성심대 출강 경력을 4년제인 한림대 출강 경력으로 기재했다. 2014년 국민대 겸임교수로 지원할 때는 주로 사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수대학원 과정인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전문석사(EMBA)를 정식 학위 과정인 서울대 경영학과(전공) 석사라고 적었다. 또 수원여대와 안양대 지원 때 모두 ‘뉴욕대 연수’라고 썼는데, 알고 보니 6개월짜리 ‘최고위 과정’에 딸린 5일짜리 방문 프로그램이었다. 해외로 수학여행 다녀오고 외국 연수라고 쓴 셈이다.
아예 ‘허위 이력’을 기재한 것도 적지 않다. 대학 강사에 처음 지원한 한림성심대 이력서엔 ‘미술세계 대상전 우수상’ 수상 경력을 허위 기재했다. 수원여대 지원 땐 서울국제애니메이션 대상을 탔다고 거짓으로 적었다. 김씨가 “돋보이려는 욕심”이었다며 “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말한 경력이다. 이걸 6년 뒤 안양대 지원서에는 대상 대신 우수상으로 등급만 바꿔 재활용했다.
이력서 허위 기재를 넘어 재직증명서를 위조하거나 허위로 발급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팀 기획이사로 2002~2005년 근무했다는 재직증명서를 수원여대에 냈지만, 이 협회는 2004년에야 출범한데다 기획팀 기획이사란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협회장 등 임직원 누구도 김씨를 알거나 같이 일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20일 “김씨가 겸임교원 지원에 필요한 ‘3년 이상 산업체 경력자’ 조건을 맞추려고 경력을 허위 기재했다는 의심이 제기된다”며 “‘3년 이상’ 등 자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것”(수원여대 관계자)이라고 보도했다. 한 댓글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 것’으로 김씨 의혹의 진화 과정을 축약했다.
김씨 의혹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상황이다. 윤 후보가 내세운 ‘공정과 상식’의 정당성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폭발력 때문이다. 경쟁자에 비해 정책과 비전이 열세인 윤 후보가 자신의 유일한 정치적 달란트마저 날릴 위기다. 윤 후보가 “완전 날조는 아니다”, “채용비리 이러는데, 이런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다”라며 방어막을 친 것도 김씨 의혹이 채용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였으리라. 그러나 검찰에 재직하며 신정아·정경심씨를 비슷한 혐의로 가차 없이 잡아넣은 윤 후보이기에 ‘내로남불’의 덫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런 태도는 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사과드린다”고 한 김씨는 사실관계를 떠나지 말고 분명히 밝히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윤 후보는 의혹 보도 사흘 만에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라며 사과했지만, 이튿날 ‘허위 이력을 인정한 것인지 논란이 있다’는 취재진 물음에 “노코멘트”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윤 후보는 특히 부인 문제를 대할 때 ‘오만과 불통’이 두드러진다. 이러면 부인 리스크가 본인 리스크로 완충 없이 전이될 수밖에 없다. 정권에 맞섰듯이 국민과도 맞서려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35% 안팎의 강경보수만으로 대선 승리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훗날, 지지율 1위를 구가하던 유력 대선 후보와 배우자의 극적인 몰락이 시작된 시기로 지금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말이다.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