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자꾸 그 원인을 따지는 버릇이 있다. 국이 짜면 ‘국이 짜구나’라 안 하고 소금을 너무 많이 쳤나 보군, 눈이 작으면 ‘눈이 작구나’라 하지 않고 다 아빠 때문이라 한다. 재판은 원인 찾기 경연장이다.
원인은 무한하다. 당구공을 구르게 한 건 큐대이지만 팔근육을 앞뒤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큐대가 공을 칠 수 없었을 것이다. 팔은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테고. 대뇌피질을 움직이게 한 건 뭘꼬?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얘기도 존재에 연관된 수많은 원인과 조건을 말하는 거겠지.
원인 찾기에는 사회 문화와 정치 성향이 반영된다. 보통은 개인과 환경 중 하나에 몰아주기를 한다. 폭식의 원인은 운동은 안 하고 절제력 없이 음식만 탐하는 개인 때문일까, 식품산업의 로비나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 때문일까. 한두 가지 원인만이 어떤 현상의 유일한 이유가 될 순 없다. 폭식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 적다거나, 그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도 원인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다른 원인이 있고, 중첩이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우리는 책임을 물을 때 일정한 편향성을 갖는다. 당신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라면 재임 기간에 일어난 좋은 일(남북회담)은 대통령 덕분이지만, 나쁜 일(LH 사태)은 구조 탓이라고 말한다. 반대파라면 좋은 일은 누가 하더라도 벌어질 거였고 나쁜 일은 모두 문재인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향적이다. 이 편향성을 스스로 알아채느냐, 그리고 다른 원인에도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가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