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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거는 한겨레] ‘청년 5일장’을 엽니다

등록 2022-01-02 17:59수정 2022-01-03 02:01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송호진 | 디지털미디어부문장

정치부 기자였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2018년 봄, 15~17살 세 사람이 국회 담장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43일간 노숙농성을 이어갔습니다. 투표할 수 있는 나이를 낮춰달라, 정치 참여 기본권을 인정해달라,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라는 요구였습니다. 그제야 많은 청소년이 그해 3월 국회 근처에서 “보라 우리의 존재를, 들으라 우리의 목소리를”이 적힌 팻말을 들고 ‘투명인간 퍼포먼스 행진’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국회 사각 건물 안을 맴돌며 정치인 발언을 담는 데 집중하느라, 국회 담장 바로 앞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 ‘시민권 확대’를 주장하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치인의 말은 그것대로 중요한 취재 대상입니다. 정책과 정국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고, 그 정치인이 어떤 사고의 틀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언론은 정치와 사회를 잇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언론은 정치가 흘려듣는 목소리들, 정치권 담장을 넘지 못한 눈물들, 정치가 보지 못하는 중대 사안을 끌어올려 시민과 정치를 이어줘야 합니다.

<한겨레>가 대통령 선거를 두달여 앞두고, 새해 초부터 시작한 ‘나의 대선, 나의 공약’ 시리즈도 그런 고민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는 기후위기·부동산·플랫폼노동·젠더차별 등, 대선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6개 주제를 잡고, 그 중심에 심층 인터뷰한 시민 100여명의 목소리를 놓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대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토론돼야 우리 사회가 좀더 진전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좁은 지면에서 축약된 시민 100여명 전체의 목소리를 한겨레 디지털 공간에 담아내는 작업도 해가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는 또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저희는 한겨레 누리집에서 청년 100여명과 대선 후보 캠프가 직접 토론하고 논쟁하는 ‘온라인 공론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몇몇 캠프는 참여하기로 했고, 일부 캠프는 참여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토론 주제와 원내 4개 정당 후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쪽이 제안한 주제를 합쳐 총 6개 주제를 정해 ‘댓글 토론’을 이어가려 합니다. 후보 캠프는 자신들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글을 남기거나, 청년들이나 다른 캠프에 궁금한 것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6개 주제 가운데 한번은 ‘화상 숙의토론’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토론 주제는 일주일마다 바뀝니다. 청년들은 해당 주제 토론에 앞서 후보별 정책에 선호 투표를 하고, 토론이 끝난 뒤 생각의 변화를 확인하는 재투표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한 주제마다 5일간 토론장을 열고 이틀 동안 토론 내용과 투표 결과를 기사로 정리해 알리는 운영에 착안해, 토론 공론장 이름을 ‘청년 5일장’으로 정했습니다. 참여 청년 모집을 곧 시작해 1월 중순께 ‘5일장’을 엽니다. 토론은 모집된 청년 중심으로 이뤄지겠지만, 다른 분들은 ‘좋아요’ 등 공감 표시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언론사 누리집은 몇몇 기사만 잠깐 읽고 나가는 곳일 뿐, 생동하는 여론이 모이는 ‘온라인 공론장’이 되지 못한 지 오래됐으니까요. 특히 청년들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들로 진작 떠나갔고, 언론은 그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며 단발성 기삿거리를 찾는 상황까지 됐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청년 5일장’ 실험의 한 발을 내디디려 합니다. 생생한 이야기가 오가고 여러 삶이 만나는 장터처럼, 한겨레가 정치와 시민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온라인 공론장의 장터를 일부라도 복원할 수 있을지 살펴보려 합니다. 4년 전 국회 밖 거리에서 삭발과 노숙농성을 했던 세 청소년처럼 정치권 담장에 막힌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올리는 길을 모색할 때, 한겨레가 그 대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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