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상상하는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끝을 가늠할 수도 가닿을 수도 없구나. 바퀴 없는 자전거 타기. 달의 뒷면에 앉아 도시락 까먹기. 우리 아들의 아들로 태어나기. 배낭 메고 부산에서 출발해 강릉, 속초, 원산, 청진,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지나 모스크바까지 가기. 죽음의 길은 날아가는 걸까 걸어가는 걸까.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 새삼 알게 되지. 일상은 이다지도 진부하구나.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럴 때면 ‘안녕히’ 같은 말을 곱씹는다.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라는 뜻이렷다.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안녕히’는 어떤 말과 함께 쓰이나?(1분 안에 열 개를 생각해 낸다면 부디 당신이 이 칼럼을 맡아주오.)
아마도 이런 말들을 떠올릴 듯.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더 쥐어짜내면 ‘안녕히 돌아가세요.’ 정도. 뭐가 문제냐고? 이런 거지. ‘안녕히 오세요.’는 왜 안 되냐고? ‘안녕히 쉬세요. 안녕히 노세요. 안녕히 일하세요. 안녕히 드세요. 안녕히 보세요.’는 왜 어색하냐고? 뜻만 보면 낯가림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들러붙을 듯한데, 실제론 제약이 심하군. ‘안녕히’의 친구는 기껏 네다섯일 뿐. 안녕히 갈 수는 있어도 안녕히 올 수는 없다니.
인간은 말이 만들어 놓은 이런 ‘관계의 그물’ 속에 잡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망.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제와 다르게 ‘안녕히 가세요.’ 날마다 새롭게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