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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올림픽과 멸치와 콩과 우리

등록 2022-01-13 18:02수정 2022-01-14 02:33

[특파원 칼럼] 정인환 | 베이징 특파원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게 됐다. 그는 2008년 여름올림픽 때도 개·폐막식을 책임진 바 있다. 베이징이 여름과 겨울올림픽을 모두 치르는 첫번째 도시인 것처럼, 장 감독도 두차례 올림픽 공식 행사를 모두 지휘하게 된 첫 인물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미-중 관계사를 가르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할 만하다. 2007년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로 당시 미국 경제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 한달여 뒤엔 158년 역사를 자랑하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간판을 내릴 참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휘청였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며 힘을 뺀 미국의 ‘유일 초강국’ 지위도 흔들리고 있었다.

2008년 8월8일 저녁 8시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됐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찬란한 문명’과 다가올 ‘영광의 시대’가 첨단 기술과 만나 압도적 규모로 펼쳐졌다. 개막공연 속 중국은 더 이상 싸구려 물건이나 만들어 파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현대적인 경제 강국으로 그려졌다. 새 둥지 모양을 한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9만명 남짓한 관중은 4시간 가까이 이어진 개막공연에 시종 환호성을 올렸다. 전세계에서 40억명가량이 생방송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힘’을 지켜봤다.

이후 미-중 관계는 빠르게 달라졌다. 미국이 금융위기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동안, 중국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위기의 조짐을 빠르게 털어냈다. 올림픽 개최 1년 전 독일을 밀어내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올림픽 2년 뒤인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개혁·개방 불과 30년여 만에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선 게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력과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도 바뀌었다. 외교·경제·문화적 개입을 통해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더라면 미국의 대중국 정책 기조가 달라졌을까? 조 바이든 행정부를 보면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란 점이 분명해 보인다.

베이징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개막식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베이징 시내에선 별다른 ‘열기’를 느낄 수 없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흥분에 휩싸였다. 중국도 다른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2008년과 2022년의 차이를 묻자, 한 중국인 친구가 한 말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차이는 중국이 달라졌다는 점일 것”이라며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자부심이 생기는,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이머우 감독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다. 그는 지난 10일 <신화통신>에 “2008년 개막공연은 1만5천명을 동원해 4시간가량 진행했지만, 이번엔 3천명 정도가 100분 남짓 공연할 것”이라며 “2008년은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젠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간소하면서도 독특한 개막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만큼 변했다. 우리, 지금 ‘멸치’와 ‘콩’이나 들먹일 땐가?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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