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명상법 중에 수식관(數息觀)이란 게 있다. 들숨과 날숨마다 하나 둘 숫자를 붙여 열까지 세는 것이다. 평소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여 망상의 족쇄를 끊는다. 이 관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딴생각이 나고 숫자를 까먹는다. 마음에 오만 가지 생각이 동시에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나마 입이 하나인 게 다행. 동시에 두말을 하지 못하고, 한 순간엔 하나의 소리만 낼 수 있으니. 하지만 세상일 차근차근 순서대로 벌어지면 좋으련만 여러 일이 동시에 벌어지니 문제. 이렇게 동시에 벌어진 일을 한 문장에 담아내는 장치가 ‘~면서’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한다. 공 차면서 껌을 씹는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책을 읽는다. 노래를 부르면서 운전을 한다.’ 앞뒤를 바꾸어도 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하면서 음악 듣기. 껌 씹으면서 공 차기. 책 읽으면서 볼일 보기. 운전하면서 노래 부르기.’
가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 때도 있다. 우스갯소리 하나. 중학생이 목사한테 당찬 질문 하나를 던졌다. “목사님, 기도하면서 담배 피워도 되나요?” 목사는 “어디서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하냐?”며 화를 냈다. 풀 죽어 있는 학생에게 친구가 넌지시 한 수 가르쳐준다. “질문을 바꿔봐.” 학생은 며칠 뒤 다시 묻는다. “목사님, 담배 피우면서 기도해도 되나요?” 목사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물론이지. 기도는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
한 문장 안에 두 개의 사건이 담기면 배치에 따라 선후 경중이 바뀌고 논리가 생긴다.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