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그들이 떠난 지 21년

등록 2022-01-27 16:42수정 2022-01-28 11:38

2001년 1월26일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가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진 일을 모티브로 만든 일본 영화 <요코미치 요노스케> 포스터.
2001년 1월26일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가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진 일을 모티브로 만든 일본 영화 <요코미치 요노스케> 포스터.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지난 26일 오후 한인타운이 있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의인 이수현’(1974~2001)의 21번째 추모식이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라 최소 인원만 참여했다.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73)씨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영상으로 인사말을 전했다. 신씨는 “매년 1월 신오쿠보에 가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일본행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며 아쉽다고 말했다.

2001년 1월26일.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이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저녁 7시15분 신오쿠보역 선로에 사람이 떨어졌다. 열차가 역에 진입하기 시작한 그 순간, 이씨와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당시 47살)는 그를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미처 열차를 피하지 못했고, 모두 희생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낯선 이국땅에서 남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이씨의 행동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추모의 물결이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각계각층에서 기부금이 모였고, 이씨의 이름을 딴 ‘엘에스에이치(LSH)아시아장학회’가 설립돼 지금까지 일본에서 유학하는 아시아 학생 1천여명에게 장학금이 지급됐다.

시간이 흘러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았다. 2019년 1월26일 도쿄에서 지내고 있을 때, 주일 한국문화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카무라 슈토 일본 감독이 만든 이씨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가케하시>(가교)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씨의 일본 유학 시절 흔적과 사고 뒤 이야기 등이 담겼다. 영화를 보는 중에 이곳저곳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상영회에는 300여명이 참여했고,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모인 것이다.

이날 이씨의 어머니도 참석했다. 신씨는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는데,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본어가 능숙했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 18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지, 능숙한 일본어를 통해 짐작이 갔다. 늘 함께하던 아버지 이성대씨는 건강상 문제로 일본에 오지 못했고, 결국 2019년 3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씨의 삶을 돌아보다가 문득 그날 함께 희생된 세키네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했다. 여기저기 뒤져봐도 정보가 적었다. 세키네는 1953년 가나가와현 가와사카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했고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사진집에는 산과 꽃, 아이를 특히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당시 70대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사고 직후 신씨가 세키네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전한 신문기사가 남아 있다.

일본에서 ‘신오쿠보 희생’을 모티브로 한 소설과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요코미치 요노스케>와 이를 원작으로 오키타 슈이치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다. 내용은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다룬 실화가 아닌 창작이지만 세키네가 이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상상을 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아직도 사고를 자주 상상하게 돼요. 그 아이는 왜 선로에 뛰어들었을까 하고. 그 아이는 분명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구나. ‘안 돼, 도울 수 없다’가 아니라 그 순간 ‘괜찮아, 도울 수 있어’라고 생각했겠지.” 소설 속 요코미치 어머니의 편지 내용이다.

이씨와 세키네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평소 삶에 대한 태도가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나왔으리라 짐작한다. 기억해야 할 사람을 계속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들이 떠난 지 벌써 21년이 됐다.

dand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1.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고작 20% 지지율에 취한 윤 대통령의 취생몽사 [아침햇발] 2.

고작 20% 지지율에 취한 윤 대통령의 취생몽사 [아침햇발]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국, ‘굴욕 외교’의 쓰린 결과다 3.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국, ‘굴욕 외교’의 쓰린 결과다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4.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5.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