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거긴 막혀 있어요. 길이 없어요.” 선생님은 나를 차에서 내려준 뒤에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네. 걱정 마세요.” 나는 가짜 미소를 지으며 큰길 쪽으로 서너 걸음 걸었다. 그러곤 차가 사라지자 곧바로 돌아서 아까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입구엔 ‘막다른길’도 아니고 ‘믹디른길’이라는 색 바랜 표지판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나는 작은 도시에 강의를 왔다. 기차역에 마중 온 선생님의 차로 학교 근처에 오니 1시간이 넘게 남았다. 혼자 주변을 산책하고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곤란해했다. “여긴 볼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시골도 도시도 아니라 어중간해요.” “괜찮습니다. 바람 좀 쐬고 들어갈게요.” “아이고 먼지가 이래 뿌연데?” 다행히 선생님은 수업을 하러 가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골목, 특히 막다른 길을 좋아한다. 보통은 산이나 언덕에 막힌 경우가 많지만 어떤 길들은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 너머로 공업 단지, 아파트, 고속도로 같은 게 들어서며 뚝 하고 잘린 경우들이다. 경계선 너머론 시간이 맹렬한 속도로 흘러가지만 이쪽엔 시간이 막혀 고인다. 그래서 다른 곳이라면 진작에 사라졌을 것들이 뻔뻔하게 남아 있다.
가령 어떤 길에선 50년은 족히 묵었을 목욕탕을 만난다. 옥색 타일은 빛이 바랬지만 굴뚝에선 여전히 연기가 난다. 어느 항구 근처에는 잘나가던 시절의 카바레와 호텔이 좀비 영화의 배경인 듯 무너지고 있다. 좀더 소박한 길에선 수타면을 뽑는 중국집의 행주 아래 닭들이 모이를 쫀다. 노인과 고양이와 화초, 시간을 쫓지 못하거나 쫓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거기 머물러 있다.
오늘의 길은 높다란 공장 벽에 막혀 있었다. 언젠가 이층 양옥으로 이어졌을 야외 계단이 유적처럼 휑한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계단을 올라 공장 안을 들여다보니 휴업 중인 듯했다. 그 안의 시간도 이제 멈춰버린 걸까? 다시 골목을 돌다 보자기에 묶인 책 뭉치를 보고 발을 멈췄다. 오래전 내가 출판사에 다닐 때 만든 책들이었다. 뭉클한 기억이 살아났다. 은퇴한 교수님이 보자기에 원고지를 싸들고 오면, 날린 글씨를 고치고 한자의 독음을 달아 전산 타자수에게 건네주곤 했다. 이듬해에 타자수는 직업을 잃었고 교수님의 원고를 피시(PC)로 옮겨줄 방법이 사라졌다. 거기가 어떤 문명의 막다른 길이었던 것이다.
막다른 길의 싼 집엔 퇴색한 직업들도 고인다. 국수 공장, 농기구 대장간, 스웨터 하청업체…. 내 신세도 다를 바 없다. “그리로 가면 아무것도 없다. 큰길로 가.” 어른들의 경고에도 나는 글을 쓰는 좁은 길로 갔다. 용케도 살아남았지만 요즘 들어 주변의 길들이 뚝뚝 끊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골목을 돌아 나와 학교로 걸어갔다. 먼지 나는 지방 도시에서 자라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씽씽 고속도로를 달려 큰 도시로 떠나 높은 아파트에 사는 삶만을 선망하는 시대다. 하지만 모두가 그 길에 들어설 수는 없다. 서울에서 멀리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기회는 확연히 줄어든다. 그런 아이들에게 큰길과 작은 길, 어느 쪽이든 행복의 방법이 있다고 말하면 믿어줄까?
진로 지도실로 들어서는데 올림머리의 선생님이 학생들과 깔깔대다 따라 들어왔다. 다육 화분들로 가득한 방이었다. “방이 참 예쁘네요.” “고마워요. 학급 수가 줄어 빈 교실을 얻었어요.” 벽에는 학생들이 진로를 꿈꾸며 그린 만화들이 가득했다. 모두 꼼꼼하고 활기가 넘쳤다. “정말 멋지네요.” “그런가요? 제가 상고에서 수십년 회계를 가르쳤어요. 너무 지겨워 그만두려다 진로 교사 일을 알아냈죠. 정년 퇴임 전에 이 일을 찾아 정말 다행이에요.” 주눅 든 내 어깨가 풀렸다. 이 아이들에겐 좀더 솔직해져도 좋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