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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내 오토바이 최고속도는 65 (하)

등록 2022-02-02 18:12수정 2022-02-10 12:37

2021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라이더유니온 최고속도65(필명)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노동조합과 비정규 노동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비정규직, 혹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의 작은 100㏄ 오토바이는 그래도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여유가 좀 생겼을 때 한 사람 두 사람, 동료들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고….

하루 10시간 넘게 오토바이를 몰다 보니 나 역시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위험하게 운행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늦지 않은 깨달음이었을까? 그날 가족과 외식을 하며 다짐했다. 나의 안전이 가족의 행복이란 사실을.

나도 어느덧 배달 베테랑이 되었다. 좋은 배달과 나쁜 배달을 구분하고 고객 만족을 위해 시간에 늦지 않게 달렸다. 신호를 잘 지키며! 작년 더운 여름날 지친 나에게 배달 노동자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조심스레 요청해오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처한 노동 환경의 통계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달 시장이 그렇게 성장한 것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설문지를 건넨 사람은 배달 노동자의 노동조합에 속한 조합원이었다. 배달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는 내가 노동자의 시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대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달 노동자가 처한 잘못된 현실을 알리고 이들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촉구하고자 국회 간담회, 언론 인터뷰, 여러 회의 등에 참석했다. 플랫폼 기업 정문에서도 처우 개선을 외쳐보았다. 여러 기회를 통해 배달 노동자의 삶을 알리고 문제를 외쳤다.

배달 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다. 오토바이의 속도와 안전, 하루의 매출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도 플랫폼은 개별 노동자의 매출에 관계없이 끝없이 신규 모집을 했고, 배달은 더 빠르게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나 역시 배달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지만, 오늘 처음 일하는 노동자와 나의 매출 차이는 크지 않았다. 플랫폼의 이용약관 변경 역시 일방적이었고, 앱을 변경할 때에도 배달 노동자한테 동의를 구하는 일이 없었다. 플랫폼이 책정하는 배달 단가는 그때그때 바뀌었고, 바뀌는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지역별 배달 단가의 차이와 프로모션으로 같은 시간 일을 해도 매출에 차이가 났다.

배달 노동자의 수는 줄지 않았고, 코로나19 또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타 대형 플랫폼에서 시작한 단건 배달로 매출은 더욱 줄었다. 떨어진 매출을 메꾸려면 근무 시간을 하루 10시간에서 11시간으로 늘려야 했다. 누적된 피로로 어깨와 팔꿈치, 팔목까지 통증이 생겼다. 내 100㏄ 오토바이의 누적 주행거리는 어느덧 7만4000㎞를 넘어섰다.

배달이 많아지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배달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배달하는 시간을 쪼개거나, 쉬는 날도 반납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내 주변 배달 노동자에게 함께하자고 알렸다.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합류하기도 했지만, 노동운동에 부정적이거나 사쪽이 혹시 차별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주저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먼저 그 길을 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 힘을 얻었다.

내가 속한 노동조합은 2018년 더운 여름 폭염수당 100원 인상을 위해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투쟁했다. 서울 각 구에 지역장을 두었다. 지역에도 지부들이 생기고 있다. 전국에서 많은 배달 노동자 모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더 많은 배달 노동자가 같은 마음으로 잘못되고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인내와 끈기로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배달 노동자의 노동조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관계 기관 두곳에서 안전강사 교육도 수료했다. 기회가 닿으면 여러 노동자 모임을 찾아가 ‘안전을 위해 멈춰야 할 때 제대로 멈춰야 한다’는 내용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내가 늦게 깨달은 안전의 중요성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전파하려고 했다.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노동조합과 비정규 노동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비정규직, 혹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충분히 예열된 나의 민트색 100㏄ 오토바이는 달리고 있다. 비록 최고속도 65㎞밖에는 못 내지만 희망을 위해 오늘도 신나게 달려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우수상 수상작이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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