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정치에서 제일 많이 동원되는 것이 전쟁 은유이다. 정치는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싸우는 전쟁터다. 우리는 선하지만, 상대방은 악하며 궤멸시켜야 할 대상이다. 선거는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운동 경기이자 게임. 둥둥 떠다니는 유권자들을 공략하여 우리 쪽으로 끌고 와야 한다. 특정 후보의 열정적인 지지자라면,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함께 혹여나 무능하고 위선적인 상대방이 권력을 잡을까봐 노심초사한다. 전쟁 은유는 사회적 대립을 말로 더욱 과장한다.
분단 상황은 대선 토론 주제로 ‘진짜 전쟁’을 올려놓았다. 사드 추가 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북 대치 상황을 ‘옆구리도 치고 다리도 치고 복부도 치고 머리도 공격하면 다 방어해야 하는’ 격투기에 비유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맞기 전에 ‘선빵’을 날려야 하는 거고.
문제는 같은 전쟁도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갖는다는 점이다. 경험의 차이는 상상의 차이를 낳는다. 은유는 중립적이지 않다. 총을 쏴본 사람에게 전쟁은 방아쇠를 당겨 총알이 날아가 상대방의 심장을 뚫고 나가는 장면이다. 총을 쏴보지 않은 사람은 총알이 날아와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여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핵미사일에 대해서도 달라진다. 발사 버튼을 누르는 자와 폭격을 당하는 자. 그래 봤자 ‘전쟁에서 이긴다는 말은 지진과 싸워 이긴다는 말만큼이나 무의미’한데도 말이다(지넷 랭킨, 미국 최초 여성 하원 의원).
정치를 전쟁으로 본다면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 세계를 달리 해석하고 다른 처방을 내리는 대안적인 정치 은유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