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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금숙의 강화일기] 귀여운 악마 당근이

등록 2022-02-13 18:23수정 2022-02-14 02:01

김금숙 | 그래픽노블 작가

혼밥과 혼술, 혼커(혼자 커피), 혼작(혼자 작업), 혼잠(혼자 잠), 혼산(혼자 산책)을 하며, 혼설(혼자 설)을 보냈다. 혼자 있는 동안 내게는 목표가 있었다. 반려견 당근이의 폭력성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웰시코기 당근이를 인천의 한 펫숍에서 만났다. 당근이와 살면서 당근이가 펫숍에 오기까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짐작이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졌다는 것도, 태어나서 꼬리를 잘렸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에 당근이는 천사다. 하지만 불안하면 폭력적이 되었다. 아기 때는 으르렁거려도 그냥 귀여웠다. 성견이 되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프랑스 친구 소개로 이태원의 한 수의사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당근이에게 프로작 반 알씩 먹일 것을 권유하였다. 프로작은 한달 정도 지나서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약을 먹인다고 당근이의 불안증과 공격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내가 프랑스에 사인회 하러 가 있는 동안 당근이의 상태는 극도로 심해졌다. 남편이 산책 가기 위해 목줄을 해줄 때마저도 이빨을 드러냈다. 남편은 그전에도 당근이에게 이미 여러번 물렸다. 병원에 갈 정도로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피가 나고 멍도 들었다.

작년 12월, 남편이 프랑스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나는 당근이를 교육시키자고 생각했다. 당근이는 어떤 상황에서 공격적이 되는가? 비가 오거나 폭풍이 일 때다. 근처에 군대 훈련이 있을 때다. 포 쏘는 소리가 하루 종일 들릴 때면 아무리 맛있는 간식도 그렇게 좋아하는 산책도 소용이 없다. 이 경우에는 집 안의 최대한 안전하고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취하게 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공사가 문제다. 서울에서 살 때도 공사 소음으로 불안에 떨었다. 시골은 조용할까? 이사를 왔지만 마찬가지다. 동네에서 전원주택 공사를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대형 트럭이 아침 7시부터 집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마다 집이 진동했다. 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근이는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트럭 소리에 잔뜩 겁을 먹고 소파 위로 올라갔다. 다가만 가도 으르렁거렸다.

‘당근아’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영리한 당근이는 간식으로 유도하는 나를 피하려고 등을 돌렸다. 나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클리커로 클릭을 하고는 맛있는 간식을 내밀었다. 인상을 구기며 금방이라도 공격하려 했던 당근이는 얼른 간식을 물었지만 내 손은 물지 않았다. 그러나 간식을 먹자마자 다시 악마의 얼굴로 변했다. 나는 다시 클릭. 그리고 간식 하나. 다시 클릭 그리고 조금 떨어져 간식 하나. 클릭. 이번엔 바닥에 간식을 주었다. 이렇게 당근이는 소파에서 내려왔다.

소파 옆에 당근이가 쉴 수 있게 넓고 푹신한 침대를 마련했다. 그 위에 간식을 주었다. 조금 더 오래 씹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침대에 정을 붙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가 낮에 네가 쉬는 곳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간식을 먹은 후 당근이는 어김없이 다시 소파 위로 올라갔다. 나는 소파 위에 의자들을 올려놓고 빈틈을 모두 채웠다. 당근이의 습성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당근이는 자신의 쉼터에서 쉬다가 소파 주위를 돌다가 했다. 이제 되었구나 싶었을 때였다. 당근이가 보이지 않았다. 당근아 어디 있어? 부르는데 애절한 당근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세상에! 소파의 팔걸이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관찰력과 끈기에 감탄과 웃음이 나면서도 그렇게나 소파에 올라가 있기를 바라는 너를 막는 내가 옳은가 회의감이 들었으며 그런 네가 가여웠고 너를 어쩌면 좋니? 하는 걱정이 되었다. 소파 위에 못 올라가게 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공격성 없이 내려오게 하자 싶었다. 교육은 다시 시작되었다. 매일 하루에 몇번씩 반복했다. 잘했을 때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그동안 당근이는 달라졌다. 여전히 예민하지만 일상이 훨씬 평화로워졌다. 물론 아직도 상황에 따라 폭력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당근이의 불안증과 폭력성 때문에 남편과 심하게 다툰 적도 있었다. 당근이를 포기하고 싶은 때도 순간적으로 있었다. 물론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안다. 너를 포기하고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너는 너무 소중하다. 당근이와 감자에게서 매일 받는 기쁨과 사랑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프랑스 속담에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벗이라고 했다. 나는 설을 혼자 보내지 않았다. 당근이와 감자가 있었다.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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