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 그래픽노블 작가
미세먼지가 매우 심한 날이었다. 마을 입구 도로 우측에 하얀 개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차로 친 후 옆으로 치운 모양이다. 진돗개 같은데 성견은 아닌 듯했다. 파란 목걸이를 했다. 그 개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4, 5개월 전쯤 되었을까? 마을 입구에 있는 공장에 흰색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살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겼다. 나이 든 남자가 마당에서 노는 그들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강아지들이에요?” 내가 물었다. “응.” “어디서 가져왔어요?” “아는 사람한테….” 공장 뒤로는 큰 도로, 좌측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금요일과 주말에는 서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으로 넘쳐났다. 시속 30㎞로 제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차량은 60㎞를 훌쩍 넘었다. 대형 트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아지가 사고를 당하는 건 순식간의 일이리라.
한달 전, 공장 안에 있던 가구며 살림살이, 온갖 것들이 전봇대 옆 토사물처럼 공장의 마당에 버려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예쁘던 마을 전체가 쓰레기장이 된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닷새 전이었다. 하얀 개 한 마리가 공장 뒤의 큰 도로 옆에 누워 있던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나의 잠재적 불안이 확신이 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근처 이웃이 치우겠지, 개 주인이 찾겠지’ 생각했다. 다음날, 강화읍에 나가던 길이었다. 개는 그대로였다.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 몰라 119로 문의를 했다. 군청에 전화를 하란다. 일요일인데 군청 직원이 받을까 싶었다. 주말근무 하는 직원이 받았다. 직원은 치우러 오겠다고 했다.
집에 오는 길, 설마 했는데 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차를 세우고 개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건널목에서 다른 개가 내 쪽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고 동시에 차 한 대가 개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개는 치이지 않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향해 뛰어왔다. 아니, 내가 아니라 누워 있는 개에게 왔다.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며 친구 주위를 돌더니 냄새를 맡고 얼굴을 비벼댔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핥아댔다. “그랬구나. 너희였구나.”
남편에게 사료와 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 개 주인 이사 간 지 2주 넘었어요.”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공장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었다. “저기 죽은 개를 아시나요?” 내가 물었다. “거기, 하얀 개랑 형제예요. 둘 다 버리고 공장 주인은 이사 갔어요.” 그날 나는 동물보호소와 반려견 입양단체에 연락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온다고 했다. 빈자리도 없고 관할구역도 아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죽은 개는 죽었다 쳐도 남은 개는 어쩌란 말인가? 군청에서 데려가도 15일 내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단다. 그러니 데려가라고 전화도 못 할 일이다. 그 개를 억지로 떼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두 눈이 뜨거워진다. 바람이 분다. 아직은 칼바람인 그것이 젖은 내 볼을 할퀸다. 나는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한다. “아이야, 다음 생엔 새로 태어나렴. 바람으로 태어나렴. 별로 태어나렴. 다시는 아프지 말고 다시는 슬프지 말고 훨훨 자유로우렴.”
목요일, 전쟁이 터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피란길에 올랐다. 옷차림과 가방만 다를 뿐 6·25 때 피란민과 무엇이 다르랴. 징집된 남편을 두고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는 남성들. 한 번도 총 따윈 만져보지도 못한 여성들이 나라와 가족을 지키고자 총을 든다. 폐허가 된 소중한 집과 고향을 뒤로하고 추위 속에 무작정 앞으로만 가야 하는 이들. 오늘은 어디서 자고 내일은 또 어디서 밤을 보낼까? 러시아의 젊은 병사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죽고 죽이는지 모른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을 끊는 일이라는데, 헤어진 가족은 어찌 다시 만날까? <풀>을 출간한 러시아 출판사의 인스타그램은 블랙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출판사 대표는 러시아 밖으로 피란 간 모양이다. 우크라이나어로 출간하기로 했던 출판사 사람들은 무사히 피란했을까? 전쟁 터지기 얼마 전까지도 연락을 받았는데…. 모두 무사하기를….
우크라이나의 한 아이가 난리 통에도 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보인다. 코끝이 매워온다. 나는 기도할 줄 모르는데 신음 소리 같은 기도가 나온다. 아, 이들을 지켜주소서. 제발 전쟁을 멈추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