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기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구두를 신고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윤석열 후보 공약대로 수사지휘권을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 | 법조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찰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법 분야 공약을 14일 내놨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진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에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가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유지해오거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해온 장치들을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8조에 명시된 법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로 꼽힌다. 1949년 이 법이 제정된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됐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선 검찰청의 수사에 장관이 직접 관여할 수 없도록 한 일종의 검찰 독립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이 조항을 폐지하고, 검찰에 예산편성권까지 주겠다고 한다.
검찰 독립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그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될 게 뻔하다.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견제장치마저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예컨대 임기 2년이 보장된 검찰총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거나, 수사를 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를 무슨 수로 통제한단 말인가.
물론,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과도하게 행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현 정부 이전에 수사지휘권이 행사된 경우는 노무현 정부 때 한차례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세차례나 발동됐다. 그럼에도 수사지휘권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지휘권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방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경찰에도 주겠다는 공약도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윤 후보 본인의 속마음이 반영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윤 후보는 ‘검경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의 공수처법 24조를 수정할 뜻을 밝히면서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제도 수정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목할 대목은 그가 이런 뜻을 밝히며 덧붙인 말이다. 그는 이런 제도 수정에도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공수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등 사건으로 입건돼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실상 ‘정치보복’을 시사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수사를 할 것인가’란 물음에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구체적인 혐의를 들지도 않고 ‘범죄’라고 기정사실화한 다음, 수사를 통한 ‘처벌’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중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의 인터뷰와 이번 공약을 종합하면, 윤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검찰공화국’이라는 실로 간단명료한 말로 압축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군사독재정권은 ‘군홧발’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짓밟아왔다. 국민 위에 군림해온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공교롭게도 윤 후보는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기 하루 전, 정책공약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에서 구두를 신은 채 맞은편 의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입길에 올랐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열차 좌석에 떡하니 올려진 구둣발은 이 시대의 암연을 암시하는 또렷한 징후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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