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2일 오후 충남 보령시 보령문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 논설위원
선거를 좌우하는 3요소로 구도, 인물, 캠페인을 꼽는다. 이번 대선은 이 가운데 구도의 물살이 워낙 거세 보인다.
가령 한국갤럽의 21~22일 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교체’ 여론은 54.2%로 ‘정권유지(재창출)’ 37.6%보다 16.6%포인트 높았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선거캠페인 전문가인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권교체’가 55%를 넘고 ‘정권재창출’은 35%를 밑돌아 그 차이가 20%포인트를 넘으면 구도가 판세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여러차례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여러 조사 결과는 이 ‘박성민 매직넘버’에 근접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다. 다만 그 격차가 20%를 확실하게 넘는 조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달 전만 해도 윤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이 차이가 일부 조사에선 한자릿수로 줄어든 시기도 짧게나마 있었다. 정권교체와 재창출이 이 정도의 극명한 차이를 보인 대선으론 1987년과 2007년, 2017년이 꼽힌다.
구도의 또 한 측면은 다자 대결이냐 양자 대결이냐다. 1987년은 야권 분열 속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4자 대결로 치러졌고, 정권교체가 압도적인 여론 구도를 뚫고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이번 대선은 형식은 4자 구도지만, 내용적으로는 각 진영이 양강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역시 윤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다.
그런데도 윤 후보가 아직 뚜렷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건 인물 경쟁력의 현저한 약세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층에서조차 윤 후보가 대한민국호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신뢰하지 못한다. 35% 안팎의 ‘묻지마 반문’을 빼면, 여전히 20% 안팎의 정권교체 찬성층은 안철수로, 이재명으로, 심상정으로, 허경영으로, 미결정층으로 흩어져 있다.
이상한 건 윤 후보의 캠페인 방식이다. 국가운영 비전과 능력을 보여줘야 할 시간에 오히려 의구심을 더 키우는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면, 정책과 공약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어느 정도 국정운영에 준비가 돼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온갖 이유를 들어 토론은 기피하면서 군중 유세엔 중독이라도 된 듯 몰두하고 있다. 겨우 토론에 나와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각종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 적잖은 시간을 쓴다.
군중 유세에선 강성 지지층에게 먹히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집권하면 배우자 김건희씨와도 밀접하게 접촉해온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을 중용해 현 정권을 수사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강성 지지층의 ‘보복 감정’에 노골적으로 구애를 보낸 것이다. ‘정치 보복’ 위협이라며 여권이 반발하자, 유세를 통해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수법”, “남이 하지도 않은 걸 뒤집어씌우는 짓”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좌파혁명이론에 빠져 있는 소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냐”며 색깔론도 다시 꺼내들고 있다. 지난 연말 티케이(TK) 지역 선대위 출범식에서 잇따라 퍼부었던 색깔공세의 재판이다. 당시 과격한 막말 선동이 지지율 급락의 한 요인이 됐다는 점을 그새 까먹은 것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 편’이 운집한 군중집회의 열기에 도취됐기 때문일 것이다.
윤 후보가 이런 이해하기 힘든 캠페인에 열중하는 것은 최근 한순간 이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준석 당대표와의 내분을 해소하고 반페미니즘 구호로 20대 남성을 공략한 것이 한몫했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 리스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반사이익을 ‘내가 잘해서’라고 오인하고 지지율에 취하면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된다. “여론의 흐름을 착각”(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한 것이다.
그 결과는 다시 좁혀지는 지지율 격차다. 불안이 엄습하면 윤 후보는 다시 어떻게든 단일화 불씨를 살려 구도를 바꾸려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게 통할까. 미결정 중도층의 선택이 중요하다. 현 여권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야당 후보를 심판의 도구로 쓸 것인가,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걸어볼 만한 기본 실력은 갖췄는지 따져볼 것인가. 실패한 선택의 역사적 후과를 우린 이미 ‘박근혜 탄핵’으로 뼈저리게 겪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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