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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 집무 공간의 역사성과 상징성 / 박용현

등록 2022-03-22 14:38수정 2022-03-23 22:18

[유레카]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거주 공간인 엘리제궁은 원래 왕족·귀족들이 소유했던 건물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소유주였던 부르봉 공작 부인이 외국으로 도주하자, 몰수당한 엘리제궁은 한때 도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사들였으나,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뒤 이곳에서 폐위됐다. 엘리제궁은 제2공화국 때인 1848년 법으로 공화국 대통령의 거주지로 공식 지정됐다. 대통령 집무실과 거처가 있고, 국무회의 등 주요 회의도 이곳에서 열린다. 프랑수아 미테랑처럼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거주는 주로 개인 집을 이용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집무와 거주를 모두 엘리제궁에서 해왔다. 왕정의 유산이 공화정의 상징이 된 사례다.

미국 백악관은 1791년 연방정부의 입지 선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위치를 선정했다. 8년 간의 공사 끝에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가 첫 입주를 했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불타기도 했고, 공간 부족 등으로 증축이 여러차례 이어졌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재임 때인 1952년 오래된 건물의 구조적 취약성이 발견돼 전면적인 개축이 이뤄졌으나 외형은 그대로 유지됐다. 백악관은 그 자체가 미국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과 같아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고, 역시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영국 총리 집무실이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는 1735년 국왕 조지 2세가 첫 총리격인 로버트 월폴에게 선사한 집이다. 월폴은 개인적인 선물로 받는 것을 거절하고, 후임 총리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조건으로 입주했다. 이후 ‘다우닝가 10번지’는 영국 정부의 상징이 됐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어서 1958년 위원회를 꾸려 건물 상태를 조사했는데,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할 정도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건물의 상징성을 고려해, 전면 개축하되 기존 자재를 최대한 재활용하면서 원형을 유지했다. 1991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포격 테러를 겪은 뒤 보안장치를 강화하는 등 보완 작업을 계속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된 국가들의 대통령·총리 집무 공간은 이렇게 영욕의 역사가 축적된 공간이며, 외관이 화려하든 소박하든 그 나라 민주주의의 표상이 되고 있다. 애초 장소 선정이나 변경을 검토할 때도 신중을 기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 공간은 대통령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온국민의 공간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집인 그곳을 임기 동안 빌려서 쓰는 셈이다. 대통령 집무실과 공식 거처를 바꾸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시급한 국정 현안은 제쳐둔 채 ‘집무실 이전 공약’에서 거론하지도 않았던 ‘용산’을 느닷없이 들고 나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집무실의 공적 의미와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모두 몰각한 행태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는 꽃구경이나 시켜주는 게 아니라,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 곳이 어디가 됐든 집무 공간의 민주적 상징성을 높여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국민의 뜻을 모으는 과정을 생략한 용산 이전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는 것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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