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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여성가족부 이름이 뭘로 바뀌든 / 이종규

등록 2022-03-31 16:45수정 2022-04-01 08:18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맨앞)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한다' 여성·시민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동안,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맨앞)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한다' 여성·시민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동안,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종규 | 논설위원

올해 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페이스북에 뜬금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올렸을 때만 해도 그게 진짜 공약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설마. 그런데 그 만우절 장난 같은 일곱 글자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빼박’ 국정과제로 검토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24일 ‘여가부 폐지는 그대로 추진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약인데 그럼. 내가 선거 때 국민에게 거짓말한다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당선자가 이 정도로 얘기했으니, 더 이상 퇴로는 없어 보인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여가부 폐지’가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것은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코로나19 극복, 기후위기, 신냉전 등 대선 주자들이 토론해야 할 묵직한 주제들이 차고 넘치는데, 그것들을 제치고 여가부 존폐 문제가 난데없이 선거의 한복판으로 불려 나왔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여가부가 이토록 주목을 받은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성평등 사회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여가부 개편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진지한 평가나 성찰은 없이 ‘닥치고 폐지’ 구호만 요란했다. “(여가부는) 한번 깔끔하게 박살을 내놓고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야 한다”(장예찬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청년본부장)는 막말에 가까운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윤 당선자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나온 과정부터 ‘갑툭튀’였다. 윤 당선자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양성평등가족부 개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을 들고나왔다. 왜 폐지하려고 하는지, 폐지 뒤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등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다음날 기자들이 공약이 바뀐 거냐고 묻자 “현재 입장은 여가부 폐지 방침이고, 더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 얼버무렸다. 공약을 내놓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윤 당선자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어떤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더욱 가관이다. 윤 당선자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여가부 폐지는 일곱번째 공약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에 들어 있다. “청년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가족’ 우선 정책이 아닌 ‘여성’ 우대 정책 위주의 불공정 정책을 다수 양산”하고 있으므로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의 공약에서 여가부는 입시 비리, 채용 비리 등과 한데 묶여 ‘공정 사회’의 걸림돌 정도로 취급된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이대남’(20대 남성)의 ‘역차별’ 정서를 염두에 둔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 했듯이, 우리나라 채용 시장에 ‘여성할당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에 적용되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있을 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특정 성이 선발 인원의 최소 30%가 되도록 추가 합격을 시켜 성별 균형을 맞추는 제도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추가 합격자 성별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다.

윤 당선자의 성평등에 대한 퇴행적인 인식은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인식은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생각이 윤 당선자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이름이 뭐가 됐든 여가부 조직 개편은 정부 차원의 ‘성평등 추진체계’ 위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자의 호언과는 달리, 여러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웅변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성별 임금 격차, 기업체 여성 임원 비율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꼴찌를 못 벗어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성별 격차 지수’에서도 156개국 중 102위(2021년)에 머물렀다. 애써 외면한다고 이런 현실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정부 조직 개편 논의는 성차별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윤 당선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성별 갈라치기’를 사실상의 선거 전략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선거에서 이겨 5년간 국정을 이끌 지도자가 된 만큼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치의 역할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지 분열을 조장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여가부 장관을 지낸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성평등 주무부처는 단순히 성별 집단 간의 기회 분배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장기적 존속 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확대 재편이 필요하다며 한 말이다. 윤 당선자가 새겨 들었으면 한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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