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헬로, 블록체인] 김윤경 |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변화무쌍한 블록체인 업계의 청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과장을 보태 숨이 차올 때가 있다. 무한한 성장을 담보하는 것 같은 변화의 다양한 모습은 대개 혁신이라 불린다.
혁신의 방향과 속도를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의문은 늘 남는다. 성장은 과연 계속해서 가능할 것인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무한한 성장에 대한 기대는 분명하게 흔들렸다.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였으며, 재고가 증가한 기업은 생산을 줄였고 신규 투자를 취소하거나 감축했다. 경제가 위축됐다.
그러는 사이 잠시 잊었던 구조적인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잠재 성장률의 하락 추세, 그리고 약한 곳이 더 빨리, 많이 무너져버려 생긴 양극화 문제가 그것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불평등의 정도는 더 심해졌으며 소득보다 자산의 불평등이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정부와 중앙은행이 열심히 밀어넣은 돈, 꽤 오래 낮게 지속된 이자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덕에 자산 가격이 뛰어 우리를 마취 상태에 머물게 하고 있는지도. 지난해 주식과 부동산은 물론 가상자산(코인) 가격도 올랐고 시장 규모(시가총액)도 커졌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55조2000억원에 이른다. 같은 시점의 현대자동차 시가총액(44조6570억원)보다 크다.
성장의 과실은 개인투자자보다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많이 가져갔다. 실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가 지난해 거둔 매출은 3조7000억원, 영업이익도 3조2000억원대다. 대형 시중은행들이 올리는 영업이익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대표 인터넷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영업이익을 합쳐도 2조원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투자도 유독 거래소에만 몰린다.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성 있는 기업을 발굴해 성장시킨다는 벤처캐피탈 투자마저 그렇다. 사실 거래소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통칭해 블록체인 업계에서 돈을 버는 곳, 그래서 투자할 만한 곳도 거래소뿐이란 얘기도 나온다. 킬러 서비스, 기술이라 할 만한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불평등 개선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의 연원을 상기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블록체인 혁명>의 저자 돈 탭스콧을 소환해본다. 탭스콧은 인터넷의 첫번째 시대인 ‘정보의 인터넷'은 부를 가져오긴 했지만 모두의 번영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불평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가치의 인터넷으로 탈바꿈하게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부가 창출되는 방법을 민주화하고 경제활동에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블록체인이 사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혁신과 그에 따른 성장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견이 많이 있겠지만 불평등 해소에 블록체인만 역할을 하라는 건 이상론에 가깝지 않나 싶다. 탈중앙화를 기본으로 하는 블록체인 정신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조세 등으로 재분배 정책을 시행할 정부, 블록체인에 대한 믿음을 가진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부를 갖게 된 거래소들의 포용성 추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는 투자자 보호나 교육 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인 분권화, 탈중앙화가 부를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란 명제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다만 성장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포용적 성장으로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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