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을 찾아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 논설위원
요즘 개인적으로 최대 미스터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어퍼컷’ 행보 재개다. 대선이 자신의 승리로 끝난 지 한참 됐다. 며칠 뒤면 당선자 꼬리표를 떼는데, 왜 아직도 저러고 있나? 보통이라면 윤 당선자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온 나라가 시끌시끌, 들썩들썩 해도 놀라울 게 없는 때다. 새 시대, 새 정부의 구상이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고, 기대와 활력이 분출할 시기다. 지금, 그런가?
110대 새 정부 국정과제를 3일 추려 내놨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존재감이 없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다듬어 내놓기는커녕 부동산부터 원전, 노동까지 과거 회귀를 노골화하고 있다. 선거용으로 내놨던 손실보상 같은 민생 대책은 규모와 폭을 줄이기 바쁘다. 새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진에게선 ‘쉰내’가 진동한다. ‘서육남’(서울대 출신, 60대, 남성) 일색 ‘찬스 내각’에, ‘40년 지기’나 ‘법대충’(윤 당선자와 서울법대·대광초·충암고 동문)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 정도로 거리낌 없는 ‘연줄 인사’가 있었던가 싶다.
윤 당선자의 공개 행보는 기이할 정도다. 당선 직후 첫 한달 ‘골든 타임’을 뜬금없는 ‘집무실 용산 이전’에 집착하느라 날려버렸다. 요 몇 주는 며칠 간격으로 전국 각지로 행차하는 데 온통 힘을 쓰고 있다. 4월11~12일 대구·경북, 20~21일 호남, 21~22일 부산·울산·경남, 25일 경기 성남, 26일 인천, 28~29일 충청, 5월2일 경기 일산·안양·수원·용인을 찾았다. 지역 민심을 청취하는 민생 행보라지만, 속내는 뻔하다. 가는 곳마다 유정복, 김태흠, 김영환, 김은혜 등 국민의힘 지방선거 후보들과 동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둔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선자를 공직자로 규정하지 않은 현행법의 허점을 노린 ‘꼼수’ 행보다.
다만 이게 먹히는 것 같진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 뒤 지방 행차는 의도와는 별개로 의미 있는 정치적 효과를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사이 윤 당선자의 무게감은 더 떨어지고 있다. 바투 일정을 잡고 가는 곳마다 어퍼컷을 날려도 윤 당선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기대와 지지도는 역대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윤 당선자 직무수행 긍정평가(43%)가 문재인 대통령(45%)보다 낮게 나타났다.
국민 다수가 공감할 만한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내놓지 못해서다. 지역 공약을 재확인하고 민심을 듣겠다는 게 전혀 명분이 없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취임을 앞둔 대통령 당선자가 만사 제치고 매달릴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지방선거에 반드시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의문이다. 국정 비전 제시와 인사에서 무능과 난맥을 드러내고서, 지역 개발 이익을 약속하고 지지층을 향해 어퍼컷을 날린다고 이를 상쇄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대통령의 책무와 자치단체장이 할 일을 충분히 가늠해 선택에 반영할 것이다.
이 모든 건 준비 없이 정권교체론에 올라타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어통령’ 당선자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뚜렷한 변화의 비전이 없으니, 집무실 이전 같은 보여주기 쇼라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갈라진 민심을 결집할 통합의 방도를 내놓지 못하니, 여전히 대선 때처럼 어퍼컷 퍼포먼스로 지지층의 환호라도 끌어내려는 것일 게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유세장에만 가면 힘이 난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편’이 운집한 군중집회의 열기에 도취해 엄중한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윤 당선자는 이미 국민 다수의 지지를 모아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몇번의 기회를 차버렸다. 기어이 집무실·관저 이전을 오기로 밀어붙였고, 내각과 참모 인선에서 민의와 동떨어진 결정을 잇따라 내렸다. 모처럼 협치의 가능성을 열었던 검찰개혁 입법 합의를 파기하도록 국민의힘을 내몰았다.
그러나 아직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다. 선거 개입용 지방 행차부터 우선 멈춰야 한다. 또 인사청문회에서 민심의 평가가 내려진 인물들을 정리하고, 협치의 최대 걸림돌인 한동훈 문제를 이제라도 신속히 풀면 된다. 미국 화가 밥 로스 말처럼 ‘참 쉽다’. ‘모두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할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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