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마련하자는 결의안이 지난 3월 유엔 환경총회에서 175개국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협약이 실현되면, 잉에르 아네르센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파리기후협약 이후 가장 중요한 다자간 환경협약”이 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곧 정부간협상위원회(INC)가 출범해 1년 반 남짓한 빠듯한 일정으로 토론과 협상을 거쳐 협약 초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플라스틱 비닐봉지에 엉킨 바다 동물들, 태평양 한복판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 눈처럼 나부끼며 내려앉는 바다의 플라스틱 조각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해저 쓰레기지대…. 이런 심각한 실태를 줄일 해법을 이제 찾을 수 있을까? 플라스틱을 너무 쉽게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지금의 플라스틱 문명이 낯설게 느껴질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결의안에서 주목받는 대목 중 하나는 플라스틱 오염을 폐기 단계만이 아니라 소비, 생산 단계까지 포괄하는 플라스틱 생애주기의 문제로 다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사이언스>에 독일, 스웨덴, 미국 등 7개국 과학자 9명이 투고한 글이 눈길을 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생산규제를 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이들은 석유에서 원료를 추출해 만드는 ‘신생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자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플라스틱 재활용을 늘리고 일회용 사용을 규제하는 정도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수 없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지금 쓸 수 있는 모든 정치적, 기술적 해법을 다 동원해도 향후 20년 동안 환경에 배출되는 플라스틱양을 79% 줄일 수 있을 뿐이다. 2040년 이후에도 해마다 1700만t이 땅과 바다로 흘러들 것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오염의 ‘상류’에서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으로 하류를 잘 관리해도, 상류에 유입되는 신생 플라스틱이 많다면 오염 가중은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신생 플라스틱 생산을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이런 주장이 협약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기업들이 생산규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도록 로비 활동에 나섰다는 <로이터> 보도를 보면, 생산규제는 앞으로 플라스틱 협약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듯하다.
누구나 알듯이 플라스틱은 현대 문명생활의 필수품이다. 플라스틱 없는 불편한 세상, 다른 세상을 우리가 상상하고 감내할 수 있을 때에야 플라스틱 오염 종식도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런 세상이 얼마나 어떻게 가능할지는 지구촌이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확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