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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직연

등록 2022-05-15 16:17수정 2022-05-16 02:4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직장 인연’의 줄임말. 이 말은 ‘원고(윤석열 검찰총장)와 한동훈은 직연 등 지속적인 친분관계가 있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수 있는 관계’라는 2021년 10월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문에 등장한다. 사전에도 안 나오지만, 이미 직장인들 사이에선 전통적인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쓸모 있는 인맥이다. 하기야 월급쟁이들한테 직장에서 맺어진 인연만큼 소중한 게 있을 수 없지.

우리에게 ‘연’은 줄(연줄)이나 끈으로 인식된다. ‘줄’은 그것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질러갈 수 있는 ‘지름길’을 낸다. 줄이 닿기만 한다면, 줄을 댈 수만 있다면 뭔 짓을 못하랴. 급하면 남과 다름없는 ‘사돈의 팔촌’과 ‘처삼촌’도 소중한 핏줄이고, 스쳐본 적 없던 10년 선후배도 ‘성님’ ‘동상’으로 탈바꿈한다. 데면데면하게 있다가도 동향이면 ‘우리가 남이가’ 하며 어깨동무를 한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인연에 비해 ‘직연’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현대적인가. 가족보다 더 오래 동고동락하며 맺어진 ‘직연’이야말로 검증 가능한 인연이다. 힘 있는 사람과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출세까진 아니더라도 평탄한 직장생활 정도는 보장된다.

하지만 인연맺기를 삶의 문법으로 익힌 사람은 이 세상을 인연인 것과 인연 아닌 것으로 나누고, 자타, 피아, 시비, 선악을 분별함으로써 급기야 민중이 부처이고 민중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게 된다. ‘끈’을 잘못 잡아 이권과 억견의 ‘끄나풀’이 된 사람들도 허다하다. 인연을 떨쳐버려야 작게는 좋은 정치를, 크게는 생사의 길을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른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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