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 논설위원
대통령이 출근길에 취재진과 짧으나마 소통하는 일은 신선하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든다. 그런 효과를 일부러 노리는 게 아닌지 생각될 정도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출근길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벌어지는 보수단체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집회·시위에 관한 상식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집회·시위가 의미를 갖는 것은 공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의견 표출의 상대방이 중요한 공적 인물일수록 집회·시위가 더 폭넓게 보장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점에서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현직 대통령의 차이를 뭉개버렸다.
집회·시위 장소에 대한 규제에서도 이 ‘공적 의미’가 기준으로 작동한다. 국정을 수행하는 집무실은 공적 장소이며,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기에 적절한 장소다. 반면 사생활이 이뤄지는 주거지인 관저는 사적 공간이며, 집회·시위에 어느 정도 제약이 이뤄질 수 있는 장소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등 주변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면서도, ‘그 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에는 허용해야 한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등 거주지에 대해선 이런 예외 규정 없이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집무 공간과 거주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 구분도 뭉개고, 자신의 ‘집무실’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동일선상에 놓았다.
공적인 의견 표출보다는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 듯한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의 ‘욕설 시위’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 대신 ‘법대로’를 들고나온 것도 유감이지만, 그 ‘법대로’의 내용마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게 당혹스럽다.
윤 대통령은 이튿날 출근길에서도 ‘법치’라는 말을 끌어왔는데, ‘검찰 독식’ 인사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번먼트 어토니(정부에서 일하는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했다. 어려운 영어 표현을 써가며 측근 검사 중용 인사를 변호했지만, 역시 상식과 동떨어진 논리다.
법치는 절대군주가 제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사람의 지배)과 달리 법률에 근거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법의 지배)을 말한다. 국정운영을 누가 담당하는지와는 상관없다. 학교 수업에서 법률가(검사)가 국정에 많이 참여하는 게 법치라고 말한다면 선생님한테 지적을 받거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작 법치와 관련해 생각해볼 대목은 이런 것이다. 검사 시절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시원 전 부장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다. 범인을 조작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검사로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대통령실 비서관, 그것도 대통령 참모들의 기강을 담당하는 비서관에 발탁됐다. 전제군주 시대라면 왕이 자기 사람의 과오를 용서하고 곁에 불러들일 수 있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미국의 ‘거번먼트 어토니’가 이런 일로 징계를 받았다면 다른 공직에 기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도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당한 징계에 불복해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법무부는 그동안 법무부를 대리하던 변호사에게 해임 통보를 했다. 1심 재판에서 법무부의 징계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받아낸 유능한 변호사를 내치는 이유는 간단히 추론된다. 징계를 당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고 그 최측근이 법무부 장관이 됐다. 법무부는 소송에서 져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논리가 통하는 곳은 ‘사람의 지배’ 체제다. ‘법의 지배’라면, 법무부는 법 절차를 통해 이뤄진 징계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해야 옳다. 미국 법무부에서 일하는 ‘거번먼트 어토니’들은 분명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법대로’라는 말은 언뜻 흠잡을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맥락 속에 놓이면 독단을 가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을 되짚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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