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광장. 임형남 그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언제부터인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터키의 국호가 최근 ‘튀르키예’(Türkiye)로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십년쯤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거의 내국인 대우를 받으며 간단한 수속을 거쳐 입국할 수 있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무렵이기도 했다. 거리에선 지나가던 차가 멈추더니 탑승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강남스타일의 한 소절을 불러주기도 했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그런 일이 이루어진 것도 신기했다. 바야흐로 세계는 인종이나 지역 등의 물리적인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는 듯했다.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에 양발을 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과 그리스, 그리고 로마시대의 시간이 쌓여 있고, 다양함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그 중심에 이스탄불이 있다. 이스탄불은 로마제국의 변방 도시 비잔티움에서 시작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천도하며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점령하고 나서 지금까지 이스탄불로 존재한다.
보스포루스 해협 서쪽 언덕 위에 오스만제국의 정궁이었던 톱카프 궁전이 있다. 그리고 그 위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에 지은 아야 소피아 성당(성 소피아 성당)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두개의 태양처럼 마주 보며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술탄 아흐메트 광장이 모스크 옆에서 아야 소피아까지 길게 이어진다. 그곳은 원래 히포드롬(Hippodrome·경주장) 광장으로 불렀다. 3세기 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만든 전차경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방도시였으나 1세기 뒤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경주장은 규모가 커졌다.
폭 450m, 깊이 130m 대형 경기장으로 10만명이 계단식 관중석에 자리잡고 경주를 구경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이후 이곳이 이슬람에 정복당하고 전차경주장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광장이 됐다.
광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다양한 문명과 시간이 한줄로 꿰어진다. 제일 먼저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나타난다. 오벨리스크란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의 신을 숭배하는 의미로 세운 기념탑을 이르는 것으로, 돌을 쌓아 올린 거대한 기둥이며 몸통에는 그 탑을 세운 파라오의 공적이나 신에 대한 찬양을 새겨넣는다. 첫번째로 만나는 오벨리스크는 콘스탄티누스 7세가 940년에 35m 높이로 쌓아 올리고 몸을 청동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십자군의 동방원정 당시 그 몸에 붙은 청동을 떼어가서 돌만 남은 채 방치된 것을 최근에 보수했다.
오벨리스크를 지나면 금속으로 만든 꽈배기 형상의 조형물이 나온다. ‘플라타이아(Plataeae)의 트라이포드’라고 하는, 그리스시대 델포이 아폴론신전에 있던 기념물이다.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기념으로 뱀 세마리가 서로 엉키며 위로 올라가 고개를 들고, 그 위에 직경 3m짜리 황금그릇을 받치는 형상이었다고 전하는데, 콘스탄티누스가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윽고 상형문자가 제대로 박혀 있는 오벨리스크가 나온다. 이 오벨리스크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재위 379~395)가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인데 대리석 받침을 괴고 그 위에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몸에 새겨진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1898년 터키를 방문해 선사한 분수가 나온다. 단아한 정자 모양의 그 건축물은 독일에서 제작해 오리엔탈 특급으로 옮겨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건축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의 꽃이라 부르는 아야 소피아가 나온다. 성당에서 모스크로, 박물관으로 변신했던 아야 소피아는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이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바뀌었지만, 다시 종교시설(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로 되돌아왔다.
언덕으로 올라 광장을 걷는 짧은 시간 동안 로마, 그리스, 이집트, 독일제국, 오스만제국 등 무수한 문명의 시간이 지나간다. 그 시간은 전쟁하고 정복하고 과거를 지우는 반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명 간 고립되었던 시절의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인터넷, 유튜브 등 보이지 않는 선, 네트워크를 통해 경계가 없어지고 문명의 벽이 점점 얇아지는 시대다. 그러나 아직도 물리력을 동원한 전쟁이 일어나고 문명파괴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