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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도심재개발, 서울의 실핏줄을 지우다

등록 2022-07-10 18:15수정 2022-07-11 11:15

서울 중구 입정동 풍경. 임형남 그림
서울 중구 입정동 풍경.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대표적인 서민의 길이었던 피맛길이 서울에서 사라진 지 10년이 넘었다. 종로 한 켜 뒤에 평행하고 얇게 난 얇은 그 길은 서민들 먹거리가 풍성한 길이었고, 이어지는 골목들 안쪽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상권이었던 종로 상권과 연결된 다양한 제조업체들이 있었다. 다양한 업종이 있었던 개개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동네의 들머리를 상징하는 이문(里門)이 있었다. 종로2가에 남아 있는 오래된 설렁탕집의 이름도 그 흔적이다.

조선 초기 이후 오랫동안 서민들의 애환이 가득 담긴 피맛길 일대를 도심재개발할 때 한참 시끄러웠다.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보니 그 안에 무척 많은 지층이 쌓여 있었다. 조선 초기의 초석도 나왔고 홍수와 화재의 흔적도 나왔고 난리에 급하게 도자기에 돈을 묻은 흔적도 나왔다. 그런 흔적이 나올 때마다 크게 뉴스에서 다뤘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였으나, 어느 날 장비가 들어와 팔을 몇 번 휘두르자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높고 뚱뚱해서 사람들을 가득 담을 수 있는 대형 건물이 들어섰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고 효용을 극대화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의 밀도는 아주 희미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을지로와 청계천 주변이 한창 사라지고 있다.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생로병사가 있고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루어진다. 만들어지고 낡아서 다시 세우는 일은 늘 반복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가 된 것은 조선 개국 시기이므로 어림 계산해보아도 600년이 훨씬 넘었다. 오래된 도시야 세상에 많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서 600년을 이어온 도시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그만큼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치, 특히 역사적 가치는 무척 높다.

그리고 직교하는 그리드로 정연하게 계획된 일반적인 수도 모습과는 달리, 원래의 물길과 지형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도시계획은 무척 독특하다. 아마도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의 독특한 자연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리라 짐작한다.

그런 흔적은 서울의 옛 지도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굉장히 엉성하게 보이는 그 지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핏줄과 가느다란 실핏줄로 구성된 사람의 몸처럼 큰길과 골목길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누비는 물길이 마치 정연한 네트워크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서울의 매력은 바로 그런 네트워크 안에 있다. 마치 보물급의 도자기나 그림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보존되는 것처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유적이고 보물이며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런 서울이 지금 부정되고 지워지고 있다.

나는 을지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정동에서 나고 자랐다. 1960년대 말 그곳이 상업화되며 동네의 살림집들이 공업사나 상점들에 밀려 사라질 때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기를 이끌던 세운상가와 을지로 주변 상점들이 쇠락하며 그곳에서 밀려나고 있다. 마치 50년 주기로 진행하는 도시의 신진대사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입정동에서 떠난 지 오래지만 고향인지라 나는 자주 그곳에 들러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하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면서 놀았던 기억을 되살리곤 했다. 껍데기는 상점과 공업사로 바뀌었지만 어릴 때의 골목이 여전히 남아있는 입정동에 들어가면, 묘한 안도감과 기름 냄새, 쇠를 갈아내는 요란한 굉음 속에서도 푸근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 안을 채우던 오래된 골목들, 조선 초부터 존재했던 그 실핏줄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구도심을 개발하는 의미는 논과 밭을 갈아엎고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 강남의 개발과는 사뭇 다르다. 도시의 역사를 밀어내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건물 하나로 치환하는 것은 마치 조선이 망하고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에, 그 가치를 모른 채 집에 있던 도자기, 반닫이 등을 들고나와 엿과 바꾸던 일과 다를 바 없다.

당장의 부동산 가치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도시의 실핏줄을 지우는 일은 마치 나이 들며 주름이 있지만 그윽하게 연륜이 묻어나던 얼굴이 성형시술로 팽팽해져서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되고, 웃어도 슬퍼도 그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과도 같다.

도시의 순환과 효용과 발전을 따지면서 너무 낡은 부분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량적으로만 환산하고 기습작전을 펼치듯 빠르게 전개하기에는 서울의 역사는 너무 깊고 그 안에 담긴 도시의 이야기는 너무 방대하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공공’에 대한 탐색은 도시에 담긴 이런 함의들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진전되리라 믿는다.

※이번 회로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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