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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진핑에게 고개 숙인 홍콩 지도자들…5년 전엔 달랐다

등록 2022-07-07 14:48수정 2022-07-08 02:38

2017년 7월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왼쪽)과 2022년 7월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오른쪽)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존 리 행정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2017년 7월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왼쪽)과 2022년 7월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오른쪽)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존 리 행정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특파원 칼럼]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1793년 영국의 첫 공식 사절단 조지 매카트니 백작의 방문을 받은 청나라는 황제를 만나려는 그에게 ‘세번 무릎 꿇고 아홉번 절하기’를 요구했다. 몇달 승강이 끝에 청은 영국식 예절을 받아들여 한쪽 무릎만 꿇는 인사를 허용했다. 어느 날 황제의 부름을 받은 매카트니는 자금성(쯔진청)으로 가 무릎을 꿇고 인사했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황제가 아닌 황제의 친서였다.

과거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외교나 국가행사의 기본은 의전이다. 인사 방식은 물론이고 태도와 의상, 자리 배치 등에 모두 메시지가 담긴다. 선전·선동이 중요한 중국은 더더욱 그렇다.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 홍콩의 6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중국 전역을 시찰하는 게 주요 업무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런 큰 행사를 놓칠 리 없다. 그는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고속열차를 타고 하루 전 홍콩에 갔다. 2020년 초 코로나19 발발 이후 이뤄진 시 주석 부부의 첫 중국 밖 나들이였다.

이날 행사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의 선서식이었다. 그는 홍콩의 새 지도자로서, 앞으로 5년 동안 홍콩과 중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고, 시 주석이 중국을 대표해 이 선서를 받았다. 짧은 선서가 끝나고, 리 장관은 시 주석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시 주석은 살짝 고개 숙여 답했다. 리 장관에 이어 새 관료 20여명도 무대에 올라 단체로 선서한 뒤 한명씩 걸어 나와 시 주석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15도 정도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고, 거의 60도로 허리를 굽힌 이도 있었다.

5년 전은 달랐다. 2017년 7월1일 캐리 람 신임 행정장관은 시 주석에게 선서한 뒤, 그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구부정한 자세의 시 주석과 달리 람 장관은 허리를 있는 대로 꼿꼿이 편 채 당당하게 악수했다. 람 장관에 이어 올라온 새 관료진도 시 주석과 악수로 인사했다. 시 주석과 람 장관은 행사 시작에 앞서 나란히 걸으며 행사장에 입장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불가피하게 악수 대신 목례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날 하루 홍콩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318명에 달했다. 확진자가 수십명만 나와도 긴장하는 중국으로서는 2천명이 넘는 확진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애초 홍콩의 코로나19 사태가 우려돼 시 주석의 행사 참석이 불투명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만 설명하기에는 지난 5년간 홍콩의 변화가 극적이다. 2019년 홍콩 범죄자를 중국에 보내는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에 100만명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자, 중국 공산당은 이듬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반격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중국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초강력 법안이었다. 보안법 도입 뒤 홍콩의 민주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잇따라 자진 해산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7년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으면서 했던 약속인 ‘군사·외교 분야를 제외하고 사회·경제·문화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일국양제가 사실상 무너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악수 대신 목례’를 제대로 보도한 홍콩 언론은 없는 듯하다. 안타까운 점은 시 주석을 향한 리 장관의 목례에 홍콩 사람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기하고 중국에 순응하기로 했거나, 속으로 화를 삭이는 냉소적인 이도 있을 테다. 한 홍콩인 친구는 “홍콩은 이미 중국에 확실히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는 그리 대단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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