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닫힌 성장판을 열어주다

등록 2022-07-10 18:21수정 2022-07-27 12:18

[한겨레 프리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제공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탐사기획팀장 겸 소통데스크

주말은 드라마 ‘정주행’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지난 토요일에 뒤늦게 케이블채널 <이엔에이>(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기 시작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로펌에 들어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많은 이들이 배우 박은빈의 혼을 갈아넣은 연기를 칭찬했지만, 내 눈길이 먼저 닿은 것은 주변 인물이었다.

우영우의 로펌 첫 출근날,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은 그가 자폐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대표를 찾는다. “저는 의뢰인 만날 수 있고 재판 나갈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사회성도 좋아야 하고 언변도 필요한데 자기소개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이어 정명석은 단호한 말투로 우영우에게 사건을 하나 맡겨본 뒤 수준이 안되면 내보내겠다고 말한다.

정명석은 우영우에게 공익사건을 하나 맡긴다.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참작할 요소가 많아 선처받을 수 있는 간단한 사건이었다. 정명석은 집행유예를 받으라고 주문하지만, 우영우는 사건을 검토한 뒤 살인미수의 유무죄를 다투겠다고 말한다. 정명석은 짜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 이유를 묻는다. 우영우는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정명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어, 잘했네. 잘했어요. 숨겨진 쟁점을 잘 찾았어. 이런 건 내가 먼저 봤어야 되는데, 내 생각이 짧았네.”

이 대목에서 콧잔등이 뜨거워진 것은 우영우의 뛰어남 때문이 아니었다. 감정을 흔든 것은 군말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의 태도였다. 맞는 말에 수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센 사람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던 이의 말을 인정하는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 더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까지.

우영우는 고저강약이 없는 빠른 말투를 지녔다. 꽂힌 것에 대해서는 그 말투로 길게 말한다. 그가 내내 꽂혀 있는 것은 고래다. 사회생활에 걸림돌인 고래 이야기를 유일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로펌 송무팀 직원인 이준호(강태오)다. 말투만 들으면 지겹지만, 내용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영우의 고래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하다. 이준호는 그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 집중하며 더 성숙한 관계를 형성한다.

간단히 보자면 이 드라마는 우영우의 성장기다. 하지만 성장을 하는 것은 우영우뿐이 아니다. 우영우와 함께하면서 정명석도, 이준호도 커간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다른 것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이상한’ 타인이다. 타인을 대하는 자세는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느냐가 좌우하는 듯하다. 자신을 성장이 끝난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평가뿐이다. ‘인사 참사’ 비판에도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훌륭하다는 대통령이나, 스피커 소리 크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은 귀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연세대 청소노동자 고발 학생의 소식을 뉴스에서 본다. 조금 더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조금 더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모든 갈등을 좋게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가능하다.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태도를 가져야만 내가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건져낸 믿음이다. 문득 무릎을 보며 169㎝의 키에서 멈춘 성장판을 원망하면서도, 나에겐 아직 우영우의 좋은 친구로 성장할 기회는 남았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꽃부리 ‘영’에 복 ‘우’지만 “사실은 영리할 ‘영’에 어리석을 ‘우’가 맞는 것 같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해석하는 우영우처럼, 자신의 훌륭함뿐이 아니라 어리석음 역시 잊지 않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bon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좌파가 만든 중국 새 국기 오성홍기 1.

좌파가 만든 중국 새 국기 오성홍기

나는 1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6411의 목소리] 2.

나는 1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6411의 목소리]

미·러는 진짜 3차 세계대전을 원하는 걸까 [세상읽기] 3.

미·러는 진짜 3차 세계대전을 원하는 걸까 [세상읽기]

의료의 ‘의’ 자도 ‘배추값’도 없던 용산 만찬…밥이 목적이었나? 4.

의료의 ‘의’ 자도 ‘배추값’도 없던 용산 만찬…밥이 목적이었나?

아직 ‘한국이 싫어서’ [아침햇발] 5.

아직 ‘한국이 싫어서’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