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5월, 4대강 관련 연구를 수행중이던 국책연구기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이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양심선언을 하는 글을 올렸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정비사업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매일매일 국토해양부의 티에프티(TFT)로부터 대운하 반대 논리에 대한 정답을 요구받고 있다”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반대 논리를 뒤집을 대안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재앙을 막기 위해” 한 일이었지만, 그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 뒤로도 사직 종용, 연구과제 수행 배제 등의 불이익이 이어졌다.
민간 연구기관도 ‘영혼 없는 연구’ 강요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2009년 1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정책과 관련된 ‘맞춤형 연구’ 압박을 받아오다 임기 1년6개월을 남기고 물러났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임사에서 “연구원을 정부의 싱크탱크(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다”고도 했다 .
연구자들이 ‘저항’에 나선 일도 있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사급 연구위원 20여명은 2009년 7월 연구위원노조를 결성했다.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는 소신을 밝하는 등 극단적인 ‘반노동’ 성향을 보여온 뉴라이트 출신 박기성 원장이 부임한 뒤 연구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연구가 노동연구원의 결과물인 것처럼 청와대에 보고된 적도 있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지난 2020년 9월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한테서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엄정한 조사와 문책” 등의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이 지사는 당시 여권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하던 중이었고, 지역화폐는 대표적인 ‘이재명표’ 정책이었다.
지난 7일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과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여권의 사퇴 압박 끝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홍 원장을 겨냥해 “우리하고 너무 안 맞는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홍 원장은 사의를 밝히며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연구 및 경영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기본 임무는 국가의 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을 두둔하는 연구 결과만 내놓는다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져 정책의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고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4대강 사업이 그 생생한 예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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