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의 상징적 인물이자 역대 최장기간 총리에 재임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던 중 총격을 받아 숨졌다. 아베 전 총리는 피격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진은 2012년 12월26일 총리실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도쿄/AP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길윤형ㅣ국제부장
“당신, 지금 이대로라면 ‘적 앞에서 도망한 총리’라는 얘길 듣는다. 기시 노부스케의 계통을 잇는 자로서 명예회복을 해야 하지 않겠나.”
지난 8일 거리연설 중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운명을 생각하며, 며칠 동안 묘한 기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12일 장례식을 마친 뒤 그에 관한 책 두어권을 쓴 저자로서, 국적이나 선악 이분법을 뛰어넘어 ‘객관적’ 평가를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글을 적는다.
67년에 걸친 아베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결단의 순간’을 꼽으라면, 2006~2007년 1차 집권에서 처참히 실패한 뒤 재기를 시도했던 2012년 9월 말 자민당 총재 선거가 아닐까 한다. 아베는 명예회복을 원했지만, 쉽게 결단할 수 없었다. 2007년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뒤 도망치듯 정권을 내던졌고, 그 모양새가 너무 갑작스럽고 졸렬했기에 ‘철없는 애송이’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이런 ‘흑역사’를 가진 인물이 총재에 재도전해 우습게 낙선한다면,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다.
아베가 찾아간 이는 외조부 기시를 따르던 직계 의원으로 자치상을 역임한 후키다 아키라(1927~2017)였다.
“기시 선생은 말씀하셨다네. 결의해 정치가가 됐다면 완전연소를 해야 한다고. 선생은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따른 국내 반발을 이기지 못해 (1960년) 총리직을 그만둬야 했네. ‘완전연소를 하지 못했다. 다시 총리가 돼 헌법 개정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네. 당신에게도 미련이 있을 것이네. 재기해 완전연소를 한다면 어떨까.”
2012년 말 극적으로 다시 정권을 잡은 아베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정치가로 변해 있었다. 1차 집권 때처럼 섣불리 이념 이슈에 매몰되지 않고, ‘아베노믹스’ 등 서민 피부에 와닿는 경제 이슈에 집중했다. 한·중과도 무작정 충돌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으로 악화한 중국과 2014년 11월 ‘4개 항목’ 합의를 맺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2015년 말 12·28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이 합의를 비판하자면 3박4일도 떠들 수 있겠지만, 아베 역시 ‘일본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내놓았다. 일본의 대표 우익인 사쿠라이 요시코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너무 분하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합의는 일본에선 아베였기에 가능했고, 한국에선 아베였기에 실패했다.
그는 ‘신냉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동아시아에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읽으려 애썼다. 그가 볼 때 ‘중국의 부상’에 맞서 현상 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유일한 길은 미-일 동맹 강화였다. 총리에 복귀한 지 두달 만인 2013년 2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일본이 이류국가로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을 상대로 “일본이 돌아왔다”고 외쳤다. 이후 엄청난 반발을 물리치고 2014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밀어붙였고, 2015년 9월엔 이를 구체화한 안보 법제를 제·개정한다. 이 과정에서 참의원 상임위원회에선 백주 대낮에 ‘날치기’도 감행했다.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자, 환심을 사려고 곧바로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았다. 이후 둘 사이 밀월이 시작됐다. 쿠릴열도 남단 네개 섬 문제를 풀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려 27번 만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좋아했던 것 같진 않지만, 2018년 5월 회담 뒤엔 취임 1주년을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내놓았다(문 대통령은 단것을 싫어한다며 먹지 않았다).
그리고 ‘필생의 과업’인 개헌. 이를 위해 정열을 불태우다 2020년 8월 지병인 장궤양이 도지며 권력을 내려놓았다. 세상엔 대체 왜 대통령이 됐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정치가로서 ‘완전연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도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을 결집해 북·중·러를 억제하겠다는 아베 노선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진화했지만, 그래서 평화로운 세계가 실현될진 알 수 없다. 그는 뻔뻔하고 역겨운 사람이었고, 신념에 충실했던 탁월한 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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