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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만인의 ‘씨’

등록 2022-07-17 18:29수정 2022-07-18 02:39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김진해 교수입니다’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직업명을 이름 앞에 놓는 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뒤에다 붙이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거 같아 싫다.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은 주변 인물들 몇몇에게 이렇게 불렀다, 이를테면 ‘김진해씨!’

호칭엔 위계와 귀천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다. 신문에선 이를 세가지 방식으로 실현한다. 첫째, 정치·경제·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사람에겐 이름 뒤에 그의 직위를 붙인다. 둘째, 일반시민에겐 ‘씨’를 붙인다. 셋째,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에겐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롯데의 이대호, 배우 박은빈, 피아니스트 임윤찬).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대한제국 시절 발행된 <독립신문>을 보자. ‘대황제 폐하’나 ‘임금’처럼 군주만 빼면, 비교적 일관성 있게 모든 사람에게 ‘씨’를 붙였다. ‘전 군수 이병륜씨’, ‘전 참판 박기양씨’. 현직에도 ‘고등재판소 재판장 이유인씨’, ‘황주 군수 김완수씨’. 다만, 죄지은 사람에겐 ‘씨’마저 안 붙이고 ‘철원군 아전 박기병이가’, ‘공주에 사는 한병순은’이라 썼다. 군주제 국가의 신문에서도 호칭이 자못 평등하였으니, 어찌 이를 모범으로 삼지 않으리오.

언어적 평등의 실현에 애써온 <한겨레>가 “오늘부터 우리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기로 한다.”고 선포해 버리는 거다. 공정과 상식, 정의가 차고 넘치는 지금이 호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최적의 시기다. ‘롯데의 이대호씨’와 ‘대통령 윤석열씨’. 당장은 어색해도 나중엔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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