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약식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혜정 |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전임 정부를 겨냥한 대대적 사정을 예고하고 있지만, 막상 내 친구와 가족들은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에 더 관심이 많다. 대통령의 40년 지기라는 ‘강릉 우 사장’ 아들은 9급 행정요원으로 대통령실에 근무 중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자신이 추천했다며 즉시 방어막을 쳤지만, 우씨가 ‘대통령 친구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을 ‘삼촌’으로 부른다는, 윤 대통령의 또 다른 40년 지기 아들 황아무개씨도 대통령실 5급 행정관으로 근무 중이다. 윤 대통령이 2003년 광주지검에서 근무할 때 수사관으로 인연을 맺은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장 후보의 아들도 대통령 부속실에 근무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윤 대통령의 6촌 인척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한다. 대통령실은 “대선캠프·인수위에서 자질과 역량을 검증했다”고 반박하지만, 이들이 애초 캠프에서 일하게 된 경위는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검증받을 ‘기회’를 아무나 얻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실 인사 책임자는 공식적으로 총무비서관과 비서실장이지만, 국민들은 총책임자인 대통령을 본다. 논란을 거듭한 첫 내각 구성부터 대통령실 인선까지, 윤 대통령 인사 논란의 핵심에는 언제나 ‘의리’와 ‘인연’이 있다. 그의 ‘형님 리더십’은 검찰 조직에선 미덕이었을지 몰라도, 사회 통합을 이뤄야 하는 대통령직 수행에선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대통령 리더십의 요체는 공공성이다. <대통령의 자격>을 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은 최고위의 개인이 아니라, 최상위의 제도”라고 규정했다. 권력을 공적인 제도로 보느냐, 사적 전유물로 보느냐에 대통령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인사다.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자신을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개인’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쓰고 싶은 사람을 쓰는 게 무슨 문제냐’는 식의 대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노골적인 검찰 편중 인사를 비롯해 국외 순방에 지인을 수행원으로 데려가는 일, 친척, 지인 자녀 채용 등 상식적이지 않은 인사도 이 맥락에선 해석이 가능하다. 대통령직이 가진 공공성에 대한 몰이해와 좁은 인재풀, 인연·의리를 중시하는 특유의 스타일이 종합된 결과가 ‘인사 참사’로 나타난 셈이다.
인사 문제는 윤석열 정부를 신뢰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윤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요인 1위는 인사 문제다. 여기에 대통령의 태도·인식 등이 결합하면서, 지지율은 속절없이 추락한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티비에스>(TBS) 의뢰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를 물은 결과, 부정 평가는 63.7%로 긍정 평가(32%)의 갑절로 조사됐다.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에서도 긍정 평가 33.4%, 부정 평가는 63.3%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지지자들의 이동 경로인 ‘지지→보류(무응답)→철회’라는 공식도 작동하지 않는다.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은 등 돌렸고, 핵심 보수 지지층만 남았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제는 추가 이탈 여부가 관심사다.
신뢰가 따르지 않는 권력은 무력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지율 하락 원인을 묻는 질문에 “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라며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난 4일 “선거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민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노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홍보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또 어민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전 정부를 겨냥한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국면 전환용이라는 걸 국민도 모르지 않는다. 대통령실의 무능을 질타하며 대대적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빠진 것은 윤 대통령의 ‘변화’다. 민생고 극복을 위한 노력, 일방적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 소통 확대 등이 절실하다. 첫 시작은 그간 이어진 인사 논란에 대한 겸허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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