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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배 짓는 이들은 왜 가두고 또 가두는가 / 안영춘

등록 2022-07-24 14:03수정 2022-07-25 02:39

[아침 햇발]
지난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의 두 발. 공동취재사진
지난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의 두 발. 공동취재사진

안영춘 ㅣ 논설위원

30만톤급 유조선의 갑판 넓이는 축구장 3개(7140㎡×3=2만1420㎡)를 붙여놓은 것과 맞먹는다. 유최안이라는, 성씨 3개를 붙여놓은 듯한 이름의 마흔한살 노동자는 거제에서 그런 배를 짓는 일을 하는데, 건조 중이던 30만톤급 유조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로·세로·높이 1m인 철 구조물(1㎥) 안으로 178㎝의 몸을 욱여넣었다. ‘철 구조물’이라는 무덤한 표현은 ‘1㎥’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생략해 버린다.

구조물은 신체 절단 마술상자다. 유최안은 얼굴 따로, 두 팔 따로다. 두 발의 존재는 놓치기 쉽다. 앉은키가 비현실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도 그 발 탓이다. 얼굴·팔은 그나마 제자리인데, 발은 있을 데가 아닌 곳에 내던져놓은 듯하다. 그 자리에 발이 있는 것보다 그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이 아득히 애타는 거리감을 부르고, 2만1420분의 1 넓이와 함께 1m라는 납작한 높이가 30만톤 중량을 이고 있는 구조가 비로소 눈에 보인다. 2022년 여름, 유최안은 그 속에서 31일을 옹그리고 있었다.

‘85호’라는 번호가 붙은 타워크레인의 철 구조물 높이는 47m다. 지상 35m 지점에는 0.75평(2.48㎡) 넓이의 조종실이 까치집마냥 매달려 있다. ‘주인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의, 부산에서 배 짓는 마흔살 노동자가 새벽 폭우를 뚫고 거기를 기어올라 조종실 안에 제 몸을 유폐했다. ‘매미’라는 이름의 초강력 태풍에 골리앗을 닮은 구조물이 바람개비처럼 돌 때, 사람도 빨래처럼 나부꼈다. 2003년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김주익은 129일을 홀로 버티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김주익과 이름 한 글자만 다른, 창원에서 배 짓는 마흔세살 노동자가 일을 하다 말고 바삐 전화를 받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고 부산으로 달려갈 때, 무수한 별들이 손에 닿을 듯 나지막이 떠 있던 사흘 전 꿈이 떠올랐다. 85호 크레인을 오를 때는, 몸서리가 쳐져 쉬이 오르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도 전화기 너머로 ‘잘 지낸다’고 덤덤히 말했던 동생이 퍼렇게 굳은 몸으로 담요 위에 누워 있었다. 꾹꾹 누르듯 유서를 읽어나갔다. ‘가족보다 노조가 먼저냐’는 원망 섞인 생각부터 들었다.

동생이 내려오지 못한 길을 내려온 형은 마음에 이끌려 노조 천막으로 갔다. 이곳 사정은 다르려니 했다. 이쪽은 원청 정규직이고, 자신은 하청이었다. 동생의 ‘동지들’과 한달간 농성했다. 이쪽 사람들도 참 힘들구나, 회사가 노조를 무던히 싫어하는구나, 정규직노조 없애버리고 하청업체만으로 운영하려는구나. 회사는 노사합의를 깨고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하더니, 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18억원 손해배상소송에 형사고소까지 했다. 동생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동생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답은 찾아지지 않고 가슴만 갑갑해지곤 했다. 해마다 기일을 빠짐없이 챙겨서일까. 동생은 꿈에도 좀체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동생이 생을 닫아걸었던 그곳에 8년 뒤(2011년), 배를 짓다 해고된 여성노동자가 다시 올라갔다. 김진숙이라 했다. 어째서 배 짓는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오르고 또 오를 수밖에 없는가. 알고자 하는 마음과 잊고자 하는 마음이 늘 팽팽히 맞섰다. 그 마음의 사태를 동료들에게도 언제 한번 내비친 적이 없다.

흐른 건 세월 말고 없었다. 유최안은 19년 전 동생과 비슷한 나이라 했다. 동생은 다리도 뻗고 몸이라도 뉘었을 텐데…. 마음이 헝클어지고 저렸다. 형은 이쪽 사정에 누구보다 훤했다. 아이엠에프로 다니던 직장을 잃고 조선업체 하청노동자로 일한 지 24년이다. 최저임금보다 몇백원 많은 시급 1만원을 받는다. 유최안은 그나마 노조가 있지만, 이 업체에는 단 한번도 없었다. 10년 전부터는 아예 움직임조차 사라졌다. 풍문만 돌아도 원·하청 할 것 없이 ‘완장’들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세월은 거꾸로도 흐르는가. 동생은 1991년 대우조선 파업 연대 모임에 갔다가, 동행한 박창수가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하고 주검마저 빼앗기는 일을 겪었다. 그때 그 대우조선 정규직노조가 31년 뒤 유최안과 동료들을 ‘하퀴벌레’라 부르는 걸 봤다. 순하디순한 동생이라면 어찌했을까. 동생-유최안-자신과 배 짓는 뭇사람을 잇는 별자리를 애써 그려본다. 세월 따라 형도 예순이 넘었다. 더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소속 업체 사장 손에 달렸다. 어찌 되든, 살아가야 한다.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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