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주에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자’는 허무맹랑한 칼럼을 썼다. ‘발칙한’ 학생 하나가 ‘이때다’ 싶었던지 카톡으로 나를 불렀다, ‘교수 김진해씨!’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이 믿음직한 청년을 당장 잡아들여 곤장을 쳐야겠으나, 먼저 밥이라도 사먹여야겠다.
그 학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말하기(구어)와 쓰기(문어)를 같은 것 또는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쓰기는 말하기를 받아 적는 것, 그게 언문일치지! 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엄연히 다르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구보 작가님’이라 부르는 것과 신문에 ‘소설가 구보씨가 새 책을 냈다’고 쓰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문의 호칭 체계엔 이미 신문만의 고유한 위계질서가 녹아 있다. 같은 업계 종사자라도 감독, 연출, 피디, 작가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지만, 배우는 아무것도 안 붙인다. 배우 이정재씨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어도 대부분의 신문은 ‘이정재 감독’이라 하지 않고 ‘감독 이정재’라 한다. ‘배우 이정재’로 쓰던 버릇을 버릴 수 없었던 게지.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 할지 ‘씨’라 할지 논쟁할 때도 ‘조선의 4번 타자’를 이대로 ‘이대호’라 할지, ‘이대호 선수’라 할지, ‘이대호씨’라 할지 토론하지 않는다.
문어(글말)의 일종으로서 특수한 지위를 누려온 신문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호명해왔는지에 대해 언론인들끼리 점검해보길 권한다. 고유한 호칭 체계의 발명은 위계적인 말의 질서를 평등하게 바꾸는 너울이 될지도 모른다.(*대우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씨의 쾌유와 안녕을 빈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